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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산(木覓山)이라고 불렸던 남산. 그곳에도 구석구석 서울성곽의 흔적과 옛 이야기들이 남아있다. 특히 남산 봉수대는 복원된 5개의 봉이 마치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로 적의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꼭대기에는 현재 인왕산으로 옮겨진 국사당 터와 탑골공원의 정자를 본뜬 팔각정도 보인다.
조금 더 내려가면 신당동 주택가에 있는 성벽이 울창한 나무숲과 함께 햇살을 맞아 운치가 있다. 성곽을 따라 장충체육관이 보이고 동국대 가는 길목에 장충단이 기다린다. 장충단은 고종이 을미사변 때 순국한 훈련대장 홍계훈과 여러 장병을 제사지내는 단이었다.
장충단을 지나면 성곽 터는 천주교 신당동 성당과 광희문까지 이어진다. 광희문은 4소문 중의 하나로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다.저승으로 가는 관문인 셈이다. 정면에는 낮은 주택들을 마주하고 양쪽으로 파란 잔디를 끼고 있는 광희문이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성곽은 터만을 남긴 채 동대문까지 끊겼만 골목과 도로 사이사이에 자신의 기억을 담고 있다.
동대문에 들어섰다. 서울의 4대문 중 유일하게 옹성으로 둘러싸인 것이 동대문이다. 기가 약해서일까? '흥인지(之)문'이라고 불리는 것도 '之'를 넣어 숭례문 쪽의 화기를 방어한다, 동쪽에 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기를 보충한다는 식의 해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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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주변 성곽 터는 지금 동대문시장으로,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운동장터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이제 성곽은 이대병원 근처에서 다시 시작된다. 탐방로가 아직 정비되지 않아 쉽게 접근하기는 힘들지만 그곳에는 성곽을 쌓던 책임 담당관들의 이름이 새겨진 각자가 있어 성곽답사에 역사적 의미를 더해준다.
낙산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반듯하고 하얀, 복원된 성곽돌과 오랜 세월을 서울과 함께한 검고 이끼 낀 성곽돌이 섞여있는 곳도 많이 발견된다.
헐린 성곽과 성곽 터는 낙산을 거쳐 혜화문으로 그리고 와룡공원까지 이어진다. 와룡공원에 들어서면 3년 전 개방한 북악산 서울성곽을 맞이할 수 있다. 군사독재 시절 남파간첩 김신조 사건으로 30여년간 문을 닫았던 북악산 성곽을 이제는 시민들이 보고 느끼고 있다.
북악산 서울성곽 답사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가이드, 관리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문화재 해설사들이 말바위에서부터 창의문까지 시민들과 동행하면서 북악산에 녹아있는 옛 성곽과 역사 이야기를 걸출한 입담으로 풀어낸다. 김은영 북악산서울성곽 탐방운영담당자는 "해설사들이 자부심과 사명의식을 가지고 일한다"며 "북악산 성곽 길은 산책로가 잘 구성돼 있고 경치가 좋아 평일 200~300명 정도의 시민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따스한 햇살과 살랑거리는 미풍이 기분 좋은 봄 날. 걷기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멀리 있지 않다. 성곽 길을 밟으면서 연인과 다정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서울에 숨겨진 옛터들을 살펴보는 것도 재밌는 데이트 코스가 될 것이다.
지난 주 돌아본 창의문∼돈의문 구간은 한강과 지금의 서울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번 주 둘러본 동대문∼숙정문 구간은 옛 서울 '한양'의 풍광을 내다볼 수 있는 과거와 현재의 접점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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