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독자가 친구의 '괘씸한 행위'에 대해 문의를 한 적이 있다.
사연은 이랬다. 퍼팅을 하다가 홀인에 실패해서 짧은 거리가 남으면 그린 바닥에 엎드려서 퍼터를 거꾸로 잡고 마치 당구를 치듯이 볼을 때려 홀아웃을 한다는 것이다.
요지는 친구의 이런 행위가 동반자를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는 이야기다. 이 친구는 규칙위반이 아니라며 여전히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데 실제 골프규칙 위반이 아닌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이 경우는 당연히 규칙위반이다. 엎드려서 당구를 치는 듯한 동작 자체가 '밀어내기'에 해당되는데다가 그립 부분으로 볼을 때린 것 역시 골프클럽 헤드로 볼을 치게 돼 있는 14조 1항을 위반했다. 스트로크플레이라면 2벌타가 부과되고, 매치플레이라면 그 홀에서 패한 것으로 인정된다.
문제는 아마추어골퍼들 사이에서 이같은 엄격한 규칙 적용이 가능하느냐는 것이다. 아웃오브바운스(OB)가 난 볼을 찾으러 갔다가 아예 그린 근처까지 올라와서 볼을 내려놓는 골퍼를 비롯해 볼이 워터해저드에 빠지면 물을 건너가서 치고, 볼이 카트도로에 걸리면 드롭을 핑계삼아 페어웨이까지 나와서 치기 일쑤이다.
수많은 골퍼들이 고의든 아니든 규칙을 위반하고 동반자가 이를 지적하면 오히려 "모처럼 필드에 나와 기분좋게 치면 되지 뭘 그렇게 따지냐"며 오히려 '치졸한 골퍼 '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혼자서라도 규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골퍼들에게는 "잘난 척 한다"는 비아냥이 돌아온다. 여기에 골프규칙의 한계가 있다.
모든 스포츠는 그러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경기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프사이드를 무시하고 골을 넣는 축구나 파울볼을 홈런으로 치는 야구가 과연 재미가 있을까. OB난 볼을 그냥 치고, 해저드에 빠지면 건너가고, 1m가 넘는 거리에서도 기브를 준다고 생각해 보자. 이래서야 골프가 지금처럼 짜릿할 수가 없다.
물론 대자연과의 싸움인 골프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억울한 경우가 많다. 호쾌하게 날아간 티 샷이 페어웨이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에 맞고 OB가 날 수도 있고, 잘맞은 볼이 디봇에 빠져 치명상을 입는 일도 허다하다. 오죽하면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 조차 디봇에 떨어진 볼을 구제해 주지 않는 규칙에 대해 '잘못됐다"면서 불만을 토로했을까.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이 골프에도 '제로섬의 법칙'이 있다. 오늘 라운드에서 나무에 맞고 OB가 난 볼이 있다면 언젠가는 OB가 날 볼이 나무 를 맞고 다시 페어웨이로 들어오는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바운스가 안좋아 해저드에 들어갔다면 다음에는 해저드에 들어간 볼이 '물수제비'를 뜨며 그린으로 올라가 버디를 잡는 횡재도 생길 것이다.
바야흐로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본격적인 시즌에 돌입하는 3월이다. 그동안 동반자들을 불편하게 만든 적이 없었는지를 되짚어보면서 올해는 무엇보다 규칙을 지키는, 정통골프를 목표로 삼아보자. 라운드가 이어지면서 규칙을 지키는 골프가 좋은 스코어보다도 더 자신을 만족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골프전문기자 golf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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