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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무능한 아빠될까 두렵다"

“두 딸 아이가 중학교 1,3학년인데 한창 예민한 나이에 ‘우리아빠는 실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능력한 아버지로 비춰지는 게 두렵습니다.”

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 앞.

말쑥한 양복차림에 서류가방까지 든 한 중년 남성이 한참동안 고용센터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들어가려는 듯싶더니 안에서 누군가가 나오자 이내 반사적으로 돌아선다. 그리고는 또 다시 센터 안을 기웃거린다.

남성이 30여분 남짓 망설이는 동안 20~30여명이 순식간에 고용지원센터로 들어선다. 모두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온 실직자들이다. 실업급여의 줄이 점점 더 길어지자 이 남성은 혹시나 급여 지원대상에서 제외될까 불안했던 모양인지 어느새 그 줄 꼬리에 합류했다.

이토록 오랫동안 망설였던 K씨의 첫 상담은 단 3분만에 끝났다. 그는 일주일 전 10년 넘게 몸 담았던 직장에서 갑자기 직원을 줄이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K씨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식들이다. "대학도 보내야 하고 한창 들어갈 돈이 많을 때 이렇게 되서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할 수나 있을지 막막하다"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2009년 '실업자 100만 시대'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이다.

순번 대기표를 꽉 움켜지고 전광판을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실업급여 수급자격 확인 창구 앞에는 순식간에 직장을 잃고 처음 이곳을 찾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넥타이를 맨 중년 남성들은 물론 20대 청년, 아줌마,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까지 다양하다.

오전 업무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시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지원센터는 여전히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 중년 여성은 앉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한다. 건물 청소일을 하다가 몸이 아파 입원했다가 바로 일자리를 잃었다는 이 여성은 "자존심, 체면을 다 버린지 오래"라며 "청소일 보다 더 험한 일이라도 해야 자식들에게 밥이라도 먹일 것 아니냐"고 하소연 했다.

이날 오후 2월 실업자가 90만명을 넘어섰다는 뉴스가 나오자 실업자들의 시선도 일제히 TV에 고정된다. 올 초 직장을 잃은 30대 남성은 "3월 실업자수는 100만명을 넘어서겠다"면서도 "솔직히 100만명이든 200만명이든 통계와 수치만으로 실직자들의 고통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직장을 잃고나서 이력서만 수십 차례 썼는데도 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런 마음을 달래보려 친구들과 소주 한잔 들이키는 것도 망설이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을 위한 일자리다.

한 쪽에 마련된 구인게시판 앞에는 일용직이라도 구해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난해 다니던 건설회사에서 권고사직 당했다는 한 40대 남자는 "이렇게 오래 놀아보기는 처음"이라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작정으로 며칠째 들여다보고 있지만 이것 마저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결국 이 남성은 오늘도 아무런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채 씁쓸히 고용센터를 빠져나갔다.

이현정 기자 hjlee303@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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