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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욱한 물안개 너머 첫사랑 그녀 얼굴 떠올라

강원도 화천 파로호 겨울호수

인적없는 이른 겨울 아침, 파로호(破虜湖)를 가득 메운 새하얀 물안개를 본적이 있는가. 살을 에는 강바람이 북한강을 넘어 화천강을 굽이 굽이 돌아 파로호에서 한숨 쉬듯 물안개를 피워내는 장관을 말이다.

누가 하얀색은 푸름을 만나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했던가. 온통 새하얀 물안개로 뒤덮인 호수는 구름 한 점 없는 짙푸른 새벽 하늘 아래서 제 빛을 찬란히 토해내며 화려함을 뽐낸다.

그 순결한 백과 청의 조화에 눈은 아리도록 시려왔고 가슴은 마음속 깊은 곳에 소중히 숨겨온 첫사랑을 만난 듯 심한 방망이질을 해된다.

◇포연 자욱한 물안개는 한 폭의 동양화

강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주말, 겨울 호수의 참맛인 물안개를 느끼기 위해 강원도 화천의 파로호를 향했다.

산천어 축제가 한창인 화천강은 이미 꽁꽁 얼어붙어 물안개를 내뱉지도 못한다. 화천읍내를 벗어나자 파로호가 있는 구만리 쪽에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화천댐이 가까워지면서 아직 얼지 않은 강물이 스르르 물안개를 피워낸다.

구만교를 지나 고개를 넘자 포연처럼 자욱한 물안개가 파로호 수면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호수를 에워싼 병풍산 정상과 호수 가운데 둥실 떠 있는 고깃배는 안개의 흐름에 모습을 감추었다 드러냈다를 반복하면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리고 있다.

나그네의 발소리에 놀라 꿈속 같은 풍경이 걷힐까 조심스레 호숫가로 내려섰다. 강추위에 새벽 낚시질을 포기한 고깃배는 얼어붙은 밧줄에 묶여 온 몸으로 안개를 받아들이고 있다.

봄, 가을 호수의 물안개가 짙은 장막이라면 겨울 물안개는 살랑이는 비단이다. 수초는 서리꽃을 곱게 입었고 물과 맞닿은 곳엔 동그란 얼음이 얼어 크리스털처럼 반짝인다.

귀를 에는 추위에 카메라를 든 손가락이 마비가 올 정도였지만 청색과 하양이 빚어내는 환상적인 조화에 카메라 셔터 소리만이 적막한 호수가를 깨운다.

아무도 없는 빈 호수는 나 혼자만을 위해 물안개를 피우고 서리꽃과 어우러진 환상의 선경을 만들어 주는 듯하다.

어둠이 가라앉고 주위가 환해지면서 서리꽃은 더욱 크게 부풀어 올랐다. 꾸역꾸역 골짜기에서 뿜어져 나온 물안개는 건너편 산자락 전체에 서리꽃으로 마치 함박눈이 내린 듯한 설경을 그려 놓았다.

파로호는 1944년 화천댐 건설로 탄생한 인공호수로 북한강 최상류의 가장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담은 청정 호수다.

파로호, 이처럼 어여쁜 이름의 호수도 없을 것이다. 입 속에 굴러가는 파로호의 어감은 그 담은 물처럼 부드럽고 시원하다. 파로호는 처음에 대붕제로 불리다가 1951년 국군이 이곳에서 중공군 3만명을 수장시키는 혁혁한 공을 세우자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의미로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물안개는 적군처럼 밀려왔다가 포연처럼 스러지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해가 높이 솟구치자 안개는 안개처럼 힘을 잃고 결국 호숫물로 녹아 들어간다. 순간 파로호의 동양화는 앨범 속 흑백사진처럼 빛을 잃고 일상의 풍경화가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딴산에서 썰매타고 아흔아홉구비 넘어 평화속으로

파로호를 나와 구만교에서 460번 지방도를 타고 북쪽으로 오르면 근대 역사의 상흔을 간직한 꺼먹다리를 만난다.

일제가 기초를 놓고 소련군이 교각을 세우고 휴전 후 남한에서 상판을 놓아 완성한 다리로 근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 영화 '전우'와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의 촬영 배경지이고 하다.

꺼먹다리를 지나 북으로 좀더 오르면 화천댐과 해산(1194m)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만나는 딴산의 아름다운 겨울풍경을 만난다.

딴산은 산이라기 보다는 섬같이 물가에 떠 있는 조그만 동산이다. 물가에 홀로 섬처럼 두둥실 떠 있는 산의 모습도 이채롭지만 일대의 산 그늘과 강물이 시원해 여름에 좋은 쉼터를 제공한다.

겨울이면 딴산 봉우리에는 강물을 끌어 올려 조성한 인공빙벽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빙벽타기를 즐기는 동호회 회원들이 겨울내내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빙벽앞 얼어붙은 냇가에선 썰매를 지칠 수 있다.

딴산에서 30여분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몇해전 호랑이가 출몰했다고 전해진 해산을 넘으면 국민들의 방위성금이 녹아들어간 거대한 평화댐을 만날 수 있다. '특별한 목적'으로 건설된 댐은 찾아온 이들에게 조용한 안식을 선사한다.

화천=글ㆍ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서울에서 경춘국도를 타고 춘천으로 가서 의암댐를 건너지 않고 5번국도 화천 방향으로 가면된다.
파로호를 가려면 화천읍에서 461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구만교 건너 고개를 넘어면 된다. 물안개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는 파로호 선착장 진입전에 있는시조시인 이태극비의 오솔길, 겨울호수의 서정이 물안개처럼 아스라히 피러오르는 곳이다. 선착장도 좋다. 닻을 내린 낚싯배와 방갈로형 수상좌대 등 겨울호수의 벗들을 감상할 수 있다.

▲산천어 축제=화천군은 오는 27일까지 화천강 일대에서 '산천어 축제'를 연다. 산천어 얼음낚시를 비롯해 산천어 맨손잡기, 튜브타기 눈썰매장, 빙상장, 눈조각 등 다채로운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잡은 산천어를 주변 식당에 가져가면 즉석에서 회를 쳐주거나 구워 먹을 수 있다. 산천어는 1급수 이상에만 사는 청정 어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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