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경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의사제'가 지역 의료의 구조적 결함을 해결하기보다 강제적인 인력 배치에만 매몰돼 있어 '거대한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의료계가 비판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25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연 '지역의사제도 이대로 괜찮은가'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조인경 기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25일 '지역의사제도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의료정책포럼을 열고 정부의 단계적 의과대학 증원과 비서울권의 지역의사 선전형 운영 방침에 대한 현장의 우려를 공유했다.
발제를 맡은 김창수 의협 정책이사(연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지역의사법은 10년 강제 의무복무를 하게 돼 있어 불이행 시 의사 면허를 취소하고 지원금까지 환수한다"며 "가장 경직되고 처벌이 심한, 제도적으로 가장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 정책이사는 그러면서 "유연성과 신뢰를 상실한 법안은 숫자상으로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결국 의사 이탈과 소송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대만의 '공비의사' 실패 사례를 언급하며 "대만은 의료 취약지와 도서 지역의 인력 공급에만 한정했고, 공공성 확보를 위해 최소한의 개입 원칙을 전제로 했다. 강제성을 높일수록 의사들의 지역 기피 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스템적 결함을 인력 투입으로만 메우려는 것이 문제"라며 "지역의사 배출 전까지 남은 6년 동안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고 수가를 현실화하는 것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일 전남대 교수(대한의학회 지역의료정책이사)는 과거 공중보건의사(공보의) 사례를 들어 "배치 타당성이 만족도와 진료 퍼포먼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중진료권 위주 배치가 이미 지역에 따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향후 전공과목 불일치 문제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이를 광역진료권으로 확대해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김 교수는 또 "환자들이 수도권으로 쏠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혈세를 들여 양성한 지역의사가 배치돼도 소용이 없다"며 경증환자의 수도권 이용 시 본인부담률 상향 등 제도적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도 지역의사제도 전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최안나 강릉의료원장은 "지역의료 사망률이 높다고 주장하면서 지역의사를 만들겠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의사 개개인에 대한 규제보다 지역 의료기관의 형사 면책과 세금 감면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원장은 "지역의사제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거대한 실패'가 될 것"이라며 "여기에 투입된 재정적 부담은 결국 우리 국민, 특히 미래 젊은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일갈했다.
정성수 충남대 교수(한국의학교육학회 부회장)는 "의정 갈등 기간 지역 의대에 합격하고도 다시 수도권 의대에 가기 위해, 또는 증원 학번 이미지를 벗기 위해 재수를 선택한 의대생들이 많았던 것처럼 내년 지역의사제로 선발된 학생들은 '실력 부족'이라는 사회적 낙인 효과를 우려해 반수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수련 환경이 부실하면 10년 복무가 끝나자마자 비숙련 의사들이 지역을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우진 경희대 의대 학생(24학번)은 "이미 일반 전형 출신과 지역의사 전형 출신 간 차별이 우려된다"며 "의대생들에게 특정 지역 근무를 강요하고 압박하는 정책이 지방 근무를 희망했던 학생들까지 오히려 반감을 갖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의대 정원 증원 발표와 맞물려 지역의사 전형이 확대되는 만큼 현장 수용성과 기본권 침해 논란, 수련문제, 지역 의료기관 역량 등 핵심 쟁점을 정교하게 점검해야 하는데도 정부 정책은 숫자에만 매몰돼 시스템을 왜곡하고 있다"며 "중앙집권적인 통제보다는 지자체와 지역 의료기관, 전문가가 참여하는 분권형 거버넌스가 정착돼야 지역의사제가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