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기생(寄生) 여야·언론, 파산한 주권

언론과 정치권이 조장하는 '외세 의존적 이분법'

최근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향한 미국의 무력 개입과 압송 사태를 바라보는 국내 언론과 정치권의 시각은 기괴할 정도로 편향적이다.

한 국가의 내부 혼란을 빌미로 외부 세력의 물리적 개입을 '정의'로 둔갑시키는 논리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는 단순히 먼 나라의 비극이 아니다.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채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고방식은, 우리 역사 속 구한말의 비극을 정당화했던 식민 사관의 망령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언론 지형과 여야 정치권은 주권 국가의 품격을 잃어버렸다.

친미·친중·친일을 표방하거나, 반대로 반미·반중·반일을 자극하며 국민의 눈을 가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들은 사안의 본질인 '자주권'과 '실익'을 따지기보다, "어느 강대국 줄에 서는 것이 유리한가"라는 노예적 관점에서 국익을 재단한다.

특정 외세의 지시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사드(THAAD) 사태나, 외교적 실익 없이 특정 진영의 선봉장을 자처하며 대중 갈등을 키운 과오를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부추긴다.

이러한 태도는 국민에게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으니 강대국에 기생해야 한다"는 패배주의를 심어주며, 결과적으로 국가 주권의 실질적 파산을 불러오고 있다.

북한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의 도발이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는 '긁어 부스럼'인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겠다며 무분별하게 외세를 끌어들이는 순간, 우리는 영원히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나라가 된다.

진정한 지혜는 남북이 서로를 향한 적대를 멈추고, 외세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는 '우리 식의 해결책'을 찾는 데 있다.

타국에 의존하는 순간 자주국방이라는 국가의 자존심은 사라지고, 우리는 다시 한번 강대국들의 장기판 위에서 소모되는 '졸(卒)'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에서 보여준 이른바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의 실체는 명확하다.

민주주의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겨진 석유 자원 탈취와 패권 유지라는 비즈니스적 목적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는 칼을 휘두르면서 북한에는 신중한 이유는 도덕적 기준이 달라서가 아니다.

오직 북한이 가진 실질적인 억지력 때문이다.

강대국은 결코 약소국의 아픔을 대신 치유해주지 않는다.

오직 자국의 이익이 있을 때만 개입하며, 그 개입의 끝은 대개 해당 국가의 영구적인 분열과 종속이다.

정치적 혼란이 외세 개입의 정당성이 될 수 있다는 논리는 과거 일제강점기의 전조였던 간섭들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다름없다.

기생하는 여야와 언론은 이제 어느 외세에 줄을 설 것인가를 두고 싸우는 저급한 정쟁을 멈춰야 한다.

이제라도 뼈를 깎는 자강의 노력을 강조하고, 내부 문제를 우리 힘으로 풀어나가는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자주국방은 단순히 무기 체계를 현대화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주적 사고와 주권의 소중함을 아는 국민적 자존심이야말로 진정한 국방의 시작이자 파산한 주권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최대억 대구경북취재국장

영남팀 영남취재본부 최대억 기자 cd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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