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종로의 소년 '양국신', 비틀즈를 품고 수성못의 전설이 되다

비틀즈부터 '연'까지… 45년 언더그라운드 외길, 이제야 어머니께 노래를 바칩니다"

대구 수성못의 밤을 지키는 71세의 베테랑 뮤지션 양국신 씨가 생애 첫 방송 녹화를 마쳤다.

지난 12월 30일 서울의 유명 음악 전문 외주제작사가 기획한 케이블 방송 녹화장에 선 그는 화려한 조명 아래 45년 음악 인생의 회한과 감사를 쏟아냈다.

이번 방송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해, 자신을 지켜준 어머니와 아내에게 바치는 뜨거운 '참회록'이다.

양국신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굳타임' 라이브카페에서 손님들의 노랫가락에 맞춰 음향을 조절하고 있다.

◆종로통 젓가락 장단과 비틀즈의 만남

양 씨의 음악적 감수성은 1950~60년대 대구의 심장부였던 종로에서 싹텄다.

종로국민학교 시절, 그가 자란 동네는 향촌동과 동성로를 잇는 길목으로 당대 최고의 재력가, 정치인, 그리고 건달들이 모여들던 해방구였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한식당에서 흘러나오던 기생들의 젓가락 장단과 손님들의 노랫가락은 그에게 '소리'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을 깨워주었다.

하지만 소년 양국신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담장 너머의 세상이었다.

비틀즈(The Beatles) 등 당대 최고의 팝송에 매료된 그는 언더그라운드 무대에 발을 들인 후 지금까지도 팝송을 주력 장르로 삼고 있다.

70~80년대 한국 그룹사운드의 황금기를 수놓았던 '연'과 같은 그룹 음악부터 깊은 감성의 발라드, 포크송까지 섭렵한 그는 대구·경북권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전천후 뮤지션이다.

◆37년생 어머니의 '일방적인 사랑'과 아내의 헌신

1955년생 외아들인 그에게 2019년 작고한 어머니(1937년생)는 성녀와도 같은 존재였다.

제주도 본관의 '양 씨'라는 파편 같은 정보 외엔 아버지에 대해 일절 입을 떼지 않았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단 한 번도 모진 소리를 하지 않는 '일방적이고 따뜻한 사랑'으로 그를 키웠다.

양 씨는 "어머니의 그 끝없는 사랑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나쁜 길로 빠졌을 것"이라며, "철이 늦게 드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80을 넘겨 제가 예순을 넘길 때까지 곁을 지켜주셨다"고 회고했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아들의 방황을 지켜보며, 남편으로서 부족했던 아들을 대신해 21살 어린 나이에 시집온 며느리의 손을 잡고 늘 미안해하던 분이었다.

이제 60대 중반이 된 아내는 여전히 라이브 카페 '굳타임'의 주방을 지킨다.

양 씨는 "그땐 왜 아내의 눈물을 몰랐을까 늘 미안하다"고 고백하지만, 아내는 "음악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는 이 생활이 내 운명"이라며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양국신씨가 40년 지기 동료들과 결성한 밴드 '더 올디스 벗 굳디스(The Oldies but Goodies)'

◆2억 투자한 음향 시스템, '더 올디스 벗 굳디스'의 자존심

양 씨의 고집은 그의 라이브 카페 '굳타임'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소년 시절부터 음향에 매료되었던 감각을 살려 2억원을 투자한 최첨단 음향 시스템은 영남권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덕분에 이동원, 박상민, 김건모 등 전설적인 가수들이 대구에 오면 반드시 들러 마이크를 잡는 '뮤지션들의 성지'가 됐다.

40년 지기 동료들과 결성한 밴드 '더 올디스 벗 굳디스(The Oldies but Goodies)'는 60~70대 베테랑들이 모여 '오래됐지만 좋은 음악'의 가치를 증명한다.

수성못 버스킹 후 카페를 찾는 이들에게 식사와 노래를 무료로 제공하는 그의 넉넉함은 대구 음악인들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의 철학이다.

◆71년의 한(恨), 인생의 노래가 되다

지난 30일 진행된 녹화에서 양 씨는 태어나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그리고 그 공허함을 채워준 음악을 노래했다.

올해 초 방영될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시청자들은 비틀즈를 꿈꾸던 소년이 71세의 거장이 되어 전하는 진솔한 인생사를 만나게 된다.

"비록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살아왔지만, 내 음악에는 인생의 진심을 담았습니다. 이제는 오직 아내와 음악을 위해 남은 생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영남팀 영남취재본부 최대억 기자 cd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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