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기자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소비는 쿠팡에 크게 의존해 왔다. 생활용품부터 패션, 가구, 전자제품까지 주요 구매가 쿠팡을 통해 이뤄졌다. 이런 쿠팡에 대한 의존은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신뢰를 전제로 한다. 내일 새벽 우리 집앞에서 주문한 물건이 도착해 있을 것이란 믿음, 혹시나 문제가 생긴다면 즉시 해결해줄 것이란 소비자 경험에서 비롯된 강력한 믿음이다. 하지만 이런 쿠팡에 대한 개인적 신뢰에도 불구하고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벌어지는 장면들은 상당히 불편하다. 사고 자체보다, 사고를 다루는 방식 때문이다.
지금의 쿠팡 사태는 본질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성격과 공개 범위를 두고 쿠팡과 정부가 맞서 있고, 그 사이에 미국도 끼어 있다. 쿠팡은 자체 조사 결과를 앞세워 사고의 성격과 규모를 설명했지만, 정부는 공식 조사 이전에 기업이 판단을 앞질러 발표하면서 혼선을 키웠다고 반박했다. 동시에 쿠팡은 미국 상장 기업으로서 미국 증권 당국 공시와 투자자 리스크 관리에 대응하고 있다. 하나의 사고를 두고 한국 정부, 쿠팡, 미국 시장이 각자의 주도권 확보와 면피, 이익를 위한 저마다의 액션에 몰두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이슈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해지는 동안 정작 피해자인 고객은 논의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쿠팡과 정부, 미국이 각자의 판단과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사이 소비자 보호는 후순위로 밀렸다. 고객의 관심은 정보 유출 범위와 필요한 대응, 받을 수 있는 보호 조치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발표 시점과 판단 책임을 둘러싼 공방뿐이다.
사실 쿠팡은 독특한 기업이다. 미국에서 상장하고,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 기업의 주인은 미국에 있고, 고객은 한국에 있는 셈이다. 이 구조 자체가 긴장을 안고 있다. 이런 모순 속에서 쿠팡이 무엇을 기업의 중심에 두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 선택이 곧 이 회사의 본질과 지속가능 역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 그 방향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미국 공시와 소송 대응은 빠르게 진행된 반면, 국내 고객을 향한 설명과 보호 조치는 상대적으로 분명하지 않았다. 이 차이가 지금 쿠팡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다.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많지만, 결국 기업의 존재 가치는 고객에게서 나온다. 주주와 투자자는 그 고객가치를 함께 키우고 나눠 갖는 자들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쿠팡처럼 수천만 명의 일상에 깊이 들어온 기업이라면, 고객 보호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존속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다. 쿠팡이 지금 자신이 쓴 왕관의 무게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규모는 이미 사회적 인프라에 가깝지만, 책임을 다루는 방식은 여전히 성장기 스타트업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의 처신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잘못이 있는 기업에 책임을 묻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조사 주도권과 메시지 관리에 힘이 쏠리면 소비자 보호라는 본질에서는 멀어진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과의 힘겨루기가 아니라 고객 불안을 줄이는 일이다. 피해 범위와 보호 조치, 재발 방지 대책을 먼저 설명하는 것이 규제 당국의 본분이다.
쿠팡 사태는 플랫폼 시대에 초대형 플랫폼 기업의 규모와 영향력이 커질수록 책임의 기준이 어떻게 설정돼야 하는지를 묻는 사건이다. 이 거대 플랫폼과 정부가 고객을 보호하는 방식에 따라 기업의 지속가능 여부와 정부 행정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이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