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인 고려아연이 미국에 희토류 등 전략 광물을 생산할 수 있는 제련소를 짓기로 했다. 고려아연이 추진 중인 미국 테네시주 제련소 투자는 단순한 해외 사업 확장이 아니라, 글로벌 전략 광물 공급망에서 한국 기업의 위상을 결정할 전략적 선택이다.
미국 국방부와 함께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총 11조원 규모로, 연간 아연 30만t, 니켈 15만t을 생산하는 북미 최대 규모 친환경 제련소 건설을 목표로 한다. 전략 광물 공급망 관점에서 이 투자는 세 가지 측면에서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첫째, 미국의 전략 광물 공급망 재구축 정책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기회다. 우리로써는 우방국 특히 미국과의 전략 광물 공급망 구축이 시급한 과제다. 첨단산업 전 분야에서 수요가 갈수록 급증하는 만큼 희토류를 포함 안티모니, 갈륨 등의 희소금속 확보는 국가 생존과 맞닿아 있는 문제다. 미 국방부가 직접 지분 투자에 참여하고 장기구매 계약을 보장하는 이번 구조는 민간 기업이 접근할 수 없는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한다.
둘째,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 시장에서 선제적 입지를 구축한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북미산 배터리 소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30년까지 북미 전기차 배터리용 니켈 수요는 현재 대비 5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문제는 공급이다. 현재 북미 지역 니켈 제련 능력은 수요의 20%도 충족하지 못한다. 고려아연의 테네시 제련소는 이 공급 갭을 메우는 전략적 거점이 되며, GM·포드 등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제조사들에게 필수 파트너로 자리 잡게 된다.
셋째, 기술 주도권 확보다. 이번 프로젝트는 고려아연이 보유한 PRMS(Plasma Reduction Melting System) 공법을 적용한다. 이 기술은 기존 제련 공정 대비 탄소 배출을 70% 이상 절감하며, 복잡한 저품위 광석에서도 고순도 금속을 경제적으로 추출할 수 있다. 글로벌 제련 산업이 탄소중립 압박에 직면한 상황에서, 친환경 고효율제련 기술의 실증 플랜트를 미국 본토에 구축하는 것은 향후 기술 라이선싱과 글로벌 표준 선점에서 결정적 우위를 제공한다.
재무적 관점에서도 이 투자는 비교적 합리적이다. 고려아연은 전체 11조원 중 약 1조원만 출자하면서도 합작법인 지분 50% 이상을 확보하고 운영권을 장악한다. 미 국방부의 직접 투자와 정책금융, 세제 혜택이 결합해 실질적 위험은 제한적이다. 2030년부터 연간 1조3000억원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이 예상되며, 이는 고려아연 현재 영업이익의 40% 수준에 해당하는 신규 수익원이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미 국방부의 지분 참여를 통제권 위험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이는 미국 정부가 프로젝트 안정성에 직접 이해관계를 갖게 됨으로써 오히려 사업 리스크를 낮춘다. 장기구매 계약과 결합한 정부 지분 참여는 전략 광물 시장의 극심한 가격 변동성으로부터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는 장치다.
이제 전략 광물 시장은 지정학적 재편기에 진입했다. 중국 중심 공급망에서 벗어나려는 서방의 움직임, 전기차·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수요 급증, 탄소중립 규제 강화는 모두 구조적 변화다. 이런 환경에서 미국 정부와 함께 북미 핵심 거점을 확보하는 것은 향후 수십 년 사업 기회의 문을 여는 열쇠다.
미·중 전략 경쟁에서 한 쪽 편에 선다는 일부 목소리도 있지만 현재 중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자원 무기화를 하는 형국에서 정부의 한·미 자원동맹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번 투자가 기업의 이익을 넘어 국가 이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성사되길 바란다.
강천구 인하대 제조혁신전문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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