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권당이 특정 법관을 겨냥해 입법적 조치를 검토하는 움직임을 두고 사법부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법적 판단이 국민의 정서와 괴리될 때 이에 대한 비판은 민주주의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입법부의 다수 의사가 사법부의 기능을 실질적으로 압박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면, 이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정 질서의 경계를 넘어설 위험을 내포한다.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학술기관인 직하(稷下)의 사상가들은 "법은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영속의 규범이어야 한다(法者, 非爲一時一人之利)"고 강조했다. 오래된 경구이지만, 법을 특정 정치적 상황이나 세력의 도구로 삼으려는 유혹에 대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로 읽힌다.
직하의 법가들은 정치가 법 위에 군림하는 순간 국가 질서가 흔들린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정치는 법이라는 공적 기반 위에서 권한을 배분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기술이다. 다시 말해 법이 먼저 서고, 정치는 그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최근 집권당의 사법부 구성이나 판결 방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법이 정치의 흐름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는 법을 공공의 규범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부산물처럼 보이게 만들며, 제도 전반에 대한 신뢰를 약화한다. 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토대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를 지닌 사회에서 갈등은 본질에 가깝다. 정치의 역할은 이러한 갈등을 제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균형으로 조정하는 데 있다. 타협은 원칙의 포기가 아니라 책임 있는 조정이며, 다수의 힘을 절제함으로써 공동체가 감내할 수 있는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정치가 이 기능을 상실하고 의석수라는 숫자의 우위를 앞세우기 시작할 때, 사법부마저 정치적 갈등의 연장선에 놓이게 되고 제도의 신뢰 기반은 약화한다.
이 문제는 정치철학을 넘어 경제학의 제도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현대 제도경제학(Institutional Economics)의 설립자이자 199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Douglass C. North)는 제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사회적·경제적 불확실성의 감소'로 보았다. 그는 법과 제도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흔들릴수록 사회 전체의 비용이 증가하고, 그 결과 장기적 성장과 혁신이 위축된다고 지적했다. 제도가 예측 가능성을 제공할 때 개인과 기업은 안정적인 기대를 형성하며 경제 활동에 나설 수 있지만, 제도가 정치의 흐름에 따라 자주 변동하는 사회는 불안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오늘날 한국 정치가 직면한 현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법을 정치로부터 일정한 거리에서 존중하려는 절제이다. 사법 제도 개편이나 법관 인사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금기일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 방식과 맥락이다. 이해에 따라 법을 해석하고 변경하는 관행이 반복된다면 민주주의는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입법부 자신의 제도적 권위 역시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직하의 법가들이 "정치는 법을 따를 때 안정되고, 법이 정치에 굴복할 때 나라가 위태롭다"고 경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의 한국 정치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법을 권력이 필요할 때마다 동원하는 수단이 아니라, 모두가 예측할 수 있는 공적 규범으로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정치는 경쟁을 넘어 균형을 모색하는 과정이라는 기본적 진실을 회복할 수 있는가. 제도가 신뢰를 잃는 순간 정치도, 경제도 함께 흔들린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정치에 요구되는 것은 더 큰 힘이 아니라, 그 힘을 절제할 수 있는 지혜이다.
김규일 美 미시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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