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물가에 공급망까지 흔든다…GMO 규제의 역설

식품업계 예의주시 중
표시문제 넘어 원료 수급 문제 대두

국내 식품 기업들이 유전자변형식품(GMO) 완전표시제 시행을 앞두고 원재료 조달 전략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표시 기준 변화가 단순한 라벨 표기 문제를 넘어 원료 수급 구조와 생산 안정성까지 흔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두·옥수수 등 핵심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상, 공급망 리스크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16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제조·가공 과정에서 유전자변형물질이나 단백질이 남지 않는 일부 품목에 대해서도 GMO 표시를 의무화했다. 표시 대상 품목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식품위생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식약처장이 정하도록 했다.

픽사베이

업계에서는 GMO 완전표시제가 기존의 표시 제도를 넘어 사실상 원재료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제조·가공 이후에도 유전자변형 DNA나 단백질이 검출되는 경우에만 표시 의무가 적용됐지만, 앞으로는 가공 여부와 관계없이 원재료가 GMO일 경우 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표시 기준이 결과물에서 원재료로 옮겨가면서 식품 제조사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기존처럼 GMO 원료를 유지하고 'GMO 사용' 표시를 감수하거나, 원료를 비유전자변형식품(Non-GMO)으로 전환해 표시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전자를 선택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GMO 표시가 소비자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브랜드 이미지 훼손과 매출 감소로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식용유가 진열돼 있는 모습. 아시아경제DB

문제는 Non-GMO 원료의 수급 여건이다. 글로벌 곡물 시장에서 Non-GMO 대두와 옥수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다. 생산·유통 과정에서도 GMO 원료와의 분리 관리가 필수여서 공급선이 특정 국가나 지역에 집중되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기상 이변이나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공급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크다.

공급망 관리 비용 역시 부담 요인이다. Non-GMO 원료를 사용하려면 생산지부터 유통, 보관, 가공까지 전 과정에서 이력 추적과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원료 교체가 아니라 공급선 재편과 관리 시스템 재구축이 필요한 구조적 변화로 보고 있다. 특히 중소·중견 식품업체일수록 전환 비용과 관리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가 상승 압박도 현실적인 문제로 꼽힌다. Non-GMO 대두와 옥수수는 국제 시장에서 GMO 원료보다 20%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콩·옥수수·카놀라 등 주요 원재료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식품 산업 구조상, 원료 전환은 곧바로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Non-GMO 전환이 본격화될 경우 1차 가공식품 가격이 5~15% 이상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여기에 과자·음료·즉석식품 등 2·3차 가공식품으로 비용이 누적 전가될 경우 소비자 체감 물가는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GMO 완전표시제가 단순한 표시 제도를 넘어 사실상의 원재료 규제로 작동할 경우, 물가와 산업 경쟁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며 "시행령 단계에서 유예 기간과 단계적 적용, 예외 기준을 정교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정책 부작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경제부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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