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안보 딜" 최대주주는 "배임 우려"
'11조원 투자' 고려아연 미국 테네시 제련소
법적 대응은 지속…경영권 분쟁 '발목' 될까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투자 계획을 두고 최윤범 회장을 비롯한 회사 측과 최대주주인 영풍·MBK파트너스 간 경영권 분쟁이 다시금 번지고 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의 미국 내 제련소 건설을 위한 신주발행을 문제 삼아 가처분을 신청하자, 고려아연은 "미국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합법적 경영 판단"이라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미국 제련소 사업 자체에는 이견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신주발행 방식과 경영권 방어를 둘러싼 양측의 충돌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려아연은 16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업은 미국 정부 정책에 부합하는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 프로젝트로, 법령과 정관에 따라 적법하게 추진되고 있다"며 "적대적 M&A에만 집착한 MBK·영풍이 사업 가치를 폄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미국 내 전기차·배터리·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에 따라 아연·연·구리 등 핵심광물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무 부담에 대해서도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와 재무적 투자자들이 전체 자금의 90% 이상을 투자하는 구조"라며 "차입 부담을 줄이고 재무안정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외 합작법인(JV)에 대해서는 "고려아연 지분은 10% 미만으로, 의결권은 독립적으로 행사되며 미국 국방부 등 외부 전략투자자가 의사결정을 주도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영풍은 미국과의 협력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영풍은 "문제는 미국 제련소 투자가 아니라, 외국 정부와 기업이 고려아연 본사 지분을 직접 취득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이라며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지배구조를 인위적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영풍은 가처분 신청에 대해 "미국 협력을 막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과 주주가치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 대응"이라며 "신주발행이 중단되더라도 정상적인 이사회 체제하에서 미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충분히 추진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로 미국 국방부·상무부와 고려아연 합작법인은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연간 54만t 규모의 핵심광물 제련·가공 시설을 짓는다. 부지 면적은 약 65만㎡다. 총투자 금액은 운용·금융비용을 포함해 74억달러(약 11조원)로, 설비투자(CAPEX) 기준으로는 66억달러(약 10조원)다. 회사 계획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부지 조성과 기초 토목 공사를 시작해 2027년 착공에 들어가며 2029년부터 단계적 가동을 거쳐 2030년 1분기 100%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금 조달은 미국 정부 자금과 민간 투자, 금융 조달이 결합된 구조다. 미국 국방부와 투자자 자금으로 21억5000만달러가 투입되며 이 가운데 국방부의 조건부 투자는 14억달러 규모다.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법(CHIPS Acts)을 근거로 2억1000만달러를 지원한다. 나머지 자금은 현지 합작법인을 중심으로 대출과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을 통해 조달된다. 고려아연은 합작법인에 대한 자사 출자 지분이 9%대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15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고려아연의 테네시 제련소 투자 결정을 "미국에 큰 승리(Big win for America)"라고 평가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며 "국가 안보를 강화하고 산업 기반을 재건하며 해외 공급망에 대한 의존을 종식하기 위한 획기적인 핵심 광물 계약"이라고 언급했다.
영풍·MBK 측은 러트닉 장관 발언에 대해 "미국 제련소가 자국 내에 건설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지, 고려아연 지분이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에 대해 동의하거나 평가한 것은 아니다"며 "미국의 평가와 별개로 기존 주주에게 불리한 증자 구조는 배임 소지가 있는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고려아연은 이번 투자 구조가 경영권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부가 참여하는 투자기구는 경영 참여나 배당을 목적으로 한 지분 투자가 아니라 전략광물 확보를 위한 공급망 차원의 금융 투자 성격이라는 설명이다. 공장 건설과 운영, 기술 통제 역시 고려아연이 설립하는 미국 현지법인을 통해 이뤄지며 미국이 확보하는 권리는 지분이 아닌 우선 구매·접근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아연이 임시 이사회를 열고 미국 정부가 참여하는 합작법인(JV)을 대상으로 신주 10.3%를 발행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하면서 영풍·MBK 연합의 지분율을 단숨에 따라잡게 됐다. 영풍·MBK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율은 현재 44.24%다. 최윤범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은 19.41%로, 한화 등 우호 지분을 모두 포함해도 32%대에 그친다. 유상증자가 성사될 경우 영풍·MBK 측 지분은 약 40% 수준으로 희석되고 최 회장 측 지분 역시 29%대로 낮아지지만 미국 정부가 참여하는 합작법인이 발행주식 총수의 10.3%를 확보하게 되면서 양측의 지분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내년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회 구성과 경영권을 둘러싼 구도 역시 다시 변수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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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 측은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비롯해 이사회 결의 무효·취소 소송 등 법적 대응을 계속할 방침이다. 대표이사와 해당 안건에 찬성한 이사들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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