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농업 바꾼 FTA]②

FTA 보완대책이 바꾼 현장
조사료 품질 편차 줄이고 안정 공급 체계 구축
사료비 부담 덜고 국내 생산 기반 강화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완주축협 김제섬유질사료공장은 그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김제섬유질사료공장은 2012년 '조사료 유통센터 지원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저장시설, 소포장 설비, 이물질 제거 장비 등을 갖추며 체계를 정비했다. 유통센터 구축에는 국비 9억원, 지방비 9억원, 자부담 12억원 등 총 30억원이 투입됐고, 2014년 준공됐다. 당시 사업 목적은 단순한 건조·저장 기능 확충을 넘어 들쭉날쭉한 국산 조사료 품질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었다. 농가에서 수확한 조사료는 기후·토양 상태 등 변수가 커 품질 격차가 심각했고, 이는 조사료 수급 불안과 축산농가의 사료비 부담으로 이어져 왔다. 유통센터가 구축되면서 이러한 구조적 문제도 점차 해결되고 있다.

9일 김제섬유질사료공장 야적장에 보관된 국산 조사료(랩사일리지) 더미. 수확 직후 들쭉날쭉한 상태로 들어온 조사료는 이곳에서 이물질 제거와 수분 조절 등 1차 가공을 거쳐 품질을 균일화한 뒤 농가에 공급된다. 사진=강나훔 기자

지난 9일 만난 김제섬유질사료공장 관계자들은 최근 가동률이 80%까지 올라갔고 매출도 10억원에 육박할 만큼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국산 조사료의 자급률이 2021년 81.2%에서 2023년 82.4%로 오르는 데도 이러한 지역 기반 유통센터 역할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가장 큰 변화는 '품질의 균일화'다. 이강훈 공장장은 "국내산 조사료는 기후 영향이 커 품질 편차가 큰 편이지만, 가공을 거치면 일정한 등급을 유지할 수 있어 농가 신뢰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수확 당시 비가 많이 오면 수분이 높아지고, 흙·이물질이 섞이는 경우도 잦다. 농가가 논에서 바로 말린 조사료는 겉으로는 상품성과 품질을 구별하기 어렵고, 래핑이 덮여 있어 외관만으로는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오랫동안 국내산 조사료에 대한 불신을 키운 요인이었다.

이 공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1차 가공'으로 해결했다. 수분 조절, 불순물 제거, 등급 분류 과정을 거친 뒤 최종 제품을 출하하기 때문에 농가는 이전보다 안정적인 품질의 조사료를 공급받게 됐다. 이 공장장은 "결국 품질을 한 번 정제해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이 가동률과 매출 증가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국산 조사료와 수입 조사료를 비교했을 때 차이는 분명하다. 수입산은 넓은 평야지대에서 대규모 기계작업으로 생산된 만큼 균일성이 높고 건조 상태가 좋지만 가격이 비싸다. 반면 국내산은 경작 규모가 분산돼 있고 기후 변수도 커 품질 편차가 크지만 가격 경쟁력은 오히려 국내산이 우위에 있다. 인터뷰 중 공장 측은 "초창기에는 농가들이 '국산은 품질이 떨어진다'며 선호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며 "등급제 도입과 가공시설 확충으로 품질이 예전보다 비약적으로 개선돼 농가 반응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김제섬유질사료공장 내부에서 국내산 조사료를 가공하는 모습. 수확해 들어온 조사료는 이물질 제거와 혼합·절단 과정을 거쳐 일정한 품질로 재정비된다. 들쭉날쭉한 국산 조사료의 품질을 균일화해 농가 신뢰를 높이는 핵심 공정이다. 사진=강나훔 기자

품질 향상은 농가의 사육 규모·생산 효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과거에는 "어떤 때는 품질이 좋아 사고, 어떤 때는 못 사고"라는 변동성이 컸지만 지금은 조합이 일정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수급 불안도 줄었다. 이 공장장은 "국내산 조사료 공급망이 안정되면 농가의 생산비 절감과 사육 규모 확대에도 도움을 준다"며 "특히 조사료 생산이 부족한 경기도·경상도 지역 농가에 전국 단위로 공급하면서 국내산 활용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제 외에도 전국에는 세 곳 정도의 조사료 유통센터가 존재한다. 다만 김제는 전북 지역의 집산지 역할을 하며 전남·전북의 과잉 생산량을 흡수하고, 이를 조사료 부족 지역에 공급하는 물류 허브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생산 기반 강화가 아니라 전국적 수급 안정에 직접 기여하는 구조로 평가된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점도 분명하다. 공장 측은 "조사료 재배·수확을 담당하는 경영체 작업비가 10년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며 "유류비·인건비는 계속 오르는데 작업비 지원은 제한적이어서 생산량을 더 늘리기 어려운 구조"라고 토로했다. 이어 "작업 경영체들이 지속적으로 조사료 생산 기반을 확충하려면 작업비 현실화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또 장기적으로는 기후 리스크 대응이 큰 과제다. 최근 잦아진 강수와 고온은 조사료 품질 저하로 직결되고, 수확 적기에 맞추지 못하면 수분·건조 상태가 크게 달라진다. 이창준 계장은 "기후에 따라 품질 편차가 발생하는 건 지금 기술로는 한계가 있다"며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공·저장 시설을 지속적으로 보강하는 방식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국산 조사료의 고도화는 국내 축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조사료 가격·품질·수급이 축산 경영을 좌우하는 현실에서,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의 기능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이 공장장은 "국산 조사료에 대한 신뢰가 과거보다 높아졌지만 여전히 갈 길이 남았다"며 "안정적 생산 기반과 작업 경영체 지원을 확대해야 국산 조사료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FTA 보완대책으로 시작된 김제의 변화는 국산 조사료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품질 균일화'라는 작은 변화가 농가의 신뢰 회복과 수급 안정, 사료비 절감이라는 구조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김제 현장의 사례는 향후 축산업 전반의 정책 설계에도 중요한 결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제작지원: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세종중부취재본부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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