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영기자
7일 홍콩 입법회 선거가 종료된 가운데 무소속 후보 앨런 웡이 홍콩 타이포지역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콩이 159명의 사망자를 낸 '웡 푹 코트' 아파트 화재 참사로 슬픔에 빠진 가운데 7일 입법회(의회) 선거를 예정대로 마쳤다. 이번 선거는 민심을 살피는 척도가 될 것으로 여겨졌다.
영국 BBC방송과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홍콩 선거관리국을 인용해 최종 투표율이 31.9%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일반 유권자 약 410만명 중 130만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이는 2021년 선거의 30.2%를 웃돌지만, 2016년 기록된 52.28%보다는 크게 낮은 수준이다. 2021년은 중국이 '애국자만(patriots-only)'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아 홍콩 선거제를 뜯어고친 해다.
홍콩 입법회 총 90명의 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에는 161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20석은 10개 선거구 주민이 직접 선출하고, 친중 진영이 장악한 선거인단(선거위원회)이 40석을 뽑는다. 나머지 30석은 업계 간접선거를 통해 뽑는 직능대표 의석이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 중 '야권' 성향 후보는 한 명도 없다. 올해 2월 제1야당이던 민주당이 해산을 결정한 데 이어 6월에는 마지막 남은 야당인 사회민주당연맹(LSD)까지 해산하면서 홍콩 내 '공식' 민주화 세력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온건한 목소리를 내온 정치인을 포함해 현직 의원의 40%에 해당하는 35명이 이번에 불출마했다.
한 홍콩 주민이 타이포지역에 설치된 선거 후보자 명단을 들여다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통적으로 홍콩 유권자의 약 60%가량이 범민주 진영에 표를 던져왔는데, 선거제 개편 이후 이들이 선거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됐다는 평가도 있다. 2023년 12월 구의원 선거 투표율은 27.5%로 역대 홍콩에서 치러진 모든 선거 가운데 가장 낮게 나오는 등 홍콩 주민들의 선거 참여도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화재 참사까지 발생하면서 민심 악화 우려가 나오자 중국·홍콩 당국은 비판 여론을 '반중·반정부' 세력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단속했다.
홍콩 정부는 당근과 채찍을 동원했다. 투표 시간 연장과 투표소 추가 설치, 투표 휴가 독려, 상점·식당 할인권 제공 등으로 투표율 높이기에 나서는 한편, 선거에 불참하거나 무효표를 던지라는 말을 온라인 등에서 한 혐의로 11명을 체포했다. 지난 6일에는 입법회 선거 관련 보도를 문제 삼아 로이터·AP·AFP통신 등 외신 매체들을 소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선거는 최소 159명의 사망자를 낸 지난달 26일 타이포 지역에서 발생한 '웡 푹 코트' 아파트 화재 참사 이후 11일 만에 치러졌다. 당국은 부실한 관리 감독과 늑장 대응으로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타이포 지역에서는 평소보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투표가 이뤄졌다고 SCMP는 전했다. 타이포 주민 응아이 벡킹(70)씨는 이번 참사 이후 친중 진영 최대 정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DAB)에 실망해 다른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밝혔다. 화재 후 불면증을 겪고 있다는 그는 "그들 중 일부는 그저 문제를 일으켰다. 제대로 일하지 않고 납세자의 돈을 낭비했다"며 젊은 후보에게 표를 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