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대표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2곳에서 도곡리 마을회관 주소를 입력한 결과. 모두 배달 가능한 가게가 없다. 전진영 기자.
'선택한 조건의 가게가 없어요. 다른 조건을 선택해보세요.'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에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 도곡길 46, 도곡리 마을회관'을 입력하자 배달 가능한 가게가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 중식, 양식 등 카테고리를 달리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 평균 연령 70세의 주민 59명이 거주하는 이곳은 거주지 반경에서 도보로 접근 가능한 거리에 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이른바 '식품사막'이다.
도곡리 마을회관 인근 편의점 냉장 코너. 레토르트 식품이 주로 진열돼있다. 전진영 기자.
도곡리 주민에게 식사를 위한 '장 보기'는 많은 시간과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마을에서 2차선 차도를 따라 3km를 나가야 띄엄띄엄 떨어진 편의점 세 곳을 볼 수 있다. 설령 편의점을 방문하더라도 컵밥, 삼각김밥, 과자 등 간단한 요깃거리 정도만 살 수 있지 생활용품이나 신선식품은 구할 수 없다.
청과류, 유제품, 육류 등 신선식품을 사려면 약 7km 떨어진 농협 하나로마트로 가야 한다. 통상의 연구에서 거주지 반경 2~3km 이내에 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곳을 식품사막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곳은 식품사막 중에서도 더욱 심화한 형태를 띠는 것이다.
하나로마트 우강농협점과 합덕농협점은 읍내 한 블록을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 주변이 가장 번화한 곳이다. 버스터미널, 재래시장, 그리고 신선식품부터 프라이팬, 의류 등 생활 잡화까지 모든 구색을 갖춘 두 마트가 있다. 웬만한 수도권 마트 못지않은 매장 크기에 냉동부터 육류, 해산물까지 모든 것을 갖췄다. 결국 도곡리 주민이 만족할 만한 장을 보려면 이 정도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1일 충남 당진 하나로마트 합덕농협에서 한 어르신이 장을 보고 있다. 강진형 기자
1일 충남 당진 합덕읍 도곡1리에서 주민이 밭일을 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접근성은 좋지 않다. 승용차로 도곡리 마을회관에서 하나로마트 우강농협까지는 10분이 걸린다. 2차선 도로를 따라 한 방향으로 쭉 달리다 시내로 진입하면 된다.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처럼 보이지만, 평균 연령 70대의 마을 주민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 보러 가는 길이 펼쳐진다.
도곡리 마을은 승용차 하나가 겨우 지나가는 좁고 구불구불한 1차선 도로로 이어져 있다. 이 도로를 한참 지나 대로변으로 나가면, 곧바로 중장비들이 달리는 2차선 도로를 마주하게 된다. 도곡리 인근에 각종 산단과 농공단지가 위치하기 때문이다. 목재 실은 덤프트럭, 컨테이너를 실은 트레일러, 특수 약품을 실은 탱크로리 등 다양한 중장비가 2차선 도로를 양방향으로 지나다닌다.
마을 주민들은 장을 보러 가기 위해 이 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하루 8번 다니는 버스 정류장에 가기 위해서도 이 2차선 도로를 건너야 한다. 취재진이 마을회관과 하나로마트를 승용차로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도 대로변 가에 손수레에 스티로폼 박스를 묶어 끌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버스로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르신들이었다.
버스를 놓치거나, 장 볼 것이 많으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76세 김지수씨는 이동식 마트가 들어오기 전까지 125cc 농업용 사륜구동 오토바이를 몰고 장을 보러 나섰다. 허리가 반이 굽고 한쪽 다리가 불편해 걷기 힘든 김씨에게 사륜구동 오토바이는 최고의 이동 수단이다.
"어르신 위험한데 어떻게 장을 보러 가세요?"하고 물었지만, 그는 그저 취재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윤재혁 이장이 "잘 안 들리셔서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고 했다. 큰 소리로 재차 물으니 그는 바구니 안에 있는 낡은 오토바이용 헬멧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제대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채로 장을 보기 위해 위험천만한 도로에 오르는 것이다.
김씨의 배우자는 현재 투병 중으로 거동이 불가능하다. 자식들은 모두 출가해 타지에 나가 있어, 김씨가 병간호와 집안일, 농사일을 모두 도맡고 있다. 배우자에게 불고기 등 영양가 있는 반찬을 만들어 먹이기 위해, 농사에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그나마 천천히라도 움직일 수 있는 김씨가 장을 보러 오토바이에 오른다.
김지수씨의 125cc 농업용 오토바이에 이동식 마트에서 산 라면 등이 실려있다. 이동식 마트가 없던 때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장을 보러 가야 했다. 전진영 기자.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동 휠체어 앞에 달린 바구니에는 박스로 포장된 과자 정도는 쉽게 담아 나를 수 있다. 마을에서 전동 휠체어는 '벤츠'로 불린다.
문제는 이 벤츠를 타고 장 보러 나가는 어르신들이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빠르게 달려도 시속 10km를 넘지 않는 전동 휠체어는 쌩쌩 달리는 중장비들을 피해 대로변 바깥에 바싹 붙어 운행한다고 해도, 사고 위험이 높다.
윤 이장은 이 마을에 벤츠를 타고 장 보러 가다 차 사고로 돌아가신 분이 있다고 했다. "버스회사도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하는디 어떻게 하겄어." 해결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다는 그의 한탄이 한동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