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기자
영국의 한 성공회 학교가 기독교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노래를 금지한 사실이 알려졌다. 연합뉴스는 17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을 인용해 "잉글랜드 남부 도싯(Dorset)의 한 학교는 지난 14일 학부모들에게 학교의 일부 구성원이 (케데헌의) '악귀' 언급에 깊은 불편함을 느낀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지난 9월 1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2025 서울헌터스 페스티벌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수록곡 '골든'을 부르는 모습으로,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연합뉴스
'케데헌'은 노래로 악귀를 물리치는 걸그룹 헌트릭스가 보이밴드 사자보이즈로 위장한 악귀들과 맞서는 이야기로, '골든'(Golden), '소다 팝'(Soda Pop), '유어 아이돌'(Your Idol) 등 여러 히트곡을 냈다. 학교 측은 "(케데헌의) 주제가 자신의 신념과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존중하는 뜻에서 자녀가 이들 노래를 학교에서 부르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무신론자인 한 학부모는 BBC에 "웃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딸은 K팝에 빠져 있고 딸 친구들도 다 K팝을 좋아한다"며 "아이들이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 하는 무해하고 좋은, 작은 일일 뿐"이라고 말했다.
경기 용인 에버랜드의 케데헌 테마존에서 어린이가 즐기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논란이 되자 학교 측은 17일 학부모들에게 보낸 공지문에서 "(지난 공지 이후)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케데헌'의 노래들이 팀워크와 용기, 친절 등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며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다만 "집에서 아이들이 접할 콘텐츠를 선택할 권리를 완전히 존중하지만, 학교 공동체 내의 다양한 믿음도 신경 쓰고 있다"며 "일부 기독교인에게 악귀의 언급은 아주 불편한 일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또래 일부가 다른 시각을 가졌을 수 있음을 이해하고 이들이 신념을 지키도록 지지하고 존중하는 방법을 탐구하도록 돕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4일 영국의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찰스 3세 국왕 주관으로 기사 작위를 수여받는 순간 '케데헌'의 '골든'이 울려 퍼졌다. AP연합뉴스
이번 논란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앞서 '케데헌' 노래가 영국 왕실에서 사용된 일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영국의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은 지난 4일 영국 런던 윈저성에서 찰스 3세 국왕 주관으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 이때 왕실 악단이 '케데헌' 주제곡인 '골든'을 연주하며 배경 음악으로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또 왕세자 윌리엄 부부의 딸 샬럿 공주는 '최고의 영화 케데헌을 보셨냐'는 한 6세 소녀 편지에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에서도 연주된 적 있다"는 답장을 보낸 적도 있다.
'케데헌'은 영국 최고의 영화상인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에는 아쉽게 후보에 들지 못했다. 지난 12일 북미 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BAFTA 영화 위원회는 '케데헌'을 후보 자격 미달로 판정해 내년 2월 개최되는 제79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BAFTA는 극장에서 정식 개봉한 영화에만 후보 자격을 부여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영국 내에서 최소 7일간 총합 10회 이상 상업적 상영이라는 최소 요건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