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정점 지났다...달러의 몰락

책 '달러 이후의 질서'
1944년 이후 막강 영향력 70년
이젠 흔들리는 세계 경제의 패권
2015년 정점 찍고 내리막길
트럼프 재집권 후 중국과 갈등
美 36조달러 부채 등 위험 요인

조선업 육성 한국을 원하지만
징벌적 관세 부과하려는 것도 모순
암호화폐 아직 위협적 모습 아냐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통화의 패권은 영국의 파운드에서 미국의 달러로 넘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압도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섰으며 1950년에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6%를 차지했다. 1944년 체결된 전후 고정환율제는 미국 달러를 전 세계 통화 체계의 중심에 놓았고, 각국은 자국 통화를 달러에 연동해 환율을 유지해야 했다. 이를 위해 각국은 달러를 외환보유고로 비축했고, 그 결과 세계 경제는 점차 미국 경제와 긴밀히 연동되기 시작했다.

게티이미지뱅크

1971년 워싱턴D.C.에서 벌어진 한 사건은 이런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해 여름, 유럽 재무부 장관들이 미국으로 모여 미국의 일방적인 금 태환 중단에 항의했다. 이 조치로 유럽 각국이 보유한 미국 채권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닉슨 행정부의 존 코널리 재무부 장관은 "달러는 우리 통화고, 문제는 당신들 거야"라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달러 정책은 미국의 권한이며, 그로 인한 불이익은 각국이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 장면은 이후 반세기 넘게 이어진 달러 패권의 상징으로 남았다.

하버드대 국제경제학 교수이자 전(前)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저자는 미국 달러가 지난 70여년간 어떻게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는지를 탐구한다.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공식적으로 기축통화로 지정된 이후 닉슨 시대의 금 태환 중단과 체제 붕괴, 2008년 금융위기, 2020년대 미·중 무역전쟁을 거치며 달러는 '세계의 통화'로 굳건히 자리했다. 현재 전 세계 외환 거래의 90%가 달러와 관련돼 있고, 글로벌 외환보유고의 60% 이상이 달러로 구성돼 있다.

미국 달러는 그동안 막강한 경제력과 높은 국가 신뢰도를 기반으로 세계 경제 패권을 주도해 왔다. 고도로 발전한 무역과 금융 시스템은 달러의 유동성과 위상을 더욱 강화시켜 과거 네덜란드의 길더화나 영국의 파운드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물론 달러의 독주에 도전한 시도도 있었다. 소련의 루블화, 일본의 엔화, 유럽의 유로화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은 모두 달러의 위상에 도전했지만 세계가 인정한 경제의 언어는 결국 달러였다"고 단언한다.

그는 최근 중국 주도의 '탈(脫)달러' 움직임과 암호화폐의 부상을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새로운 변수로 꼽는다. 지금까지 중국은 위안화를 달러에 연동해 환율 안정을 유지했으나, 최근 들어 브릭스(BRICS) 내에서 위안화 중심의 결제를 확대하며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우방국들 역시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통화 다각화 전략을 추진하는 추세다.

저자에 따르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이미 2015년을 정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 중국이 달러 블록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그는 "달러 중심 질서에서 대륙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36조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연방 부채, 매년 1조달러가 넘는 이자 비용, 연방준비제도(Fed)의 독립성 약화, 정치적 분열 등은 달러 신뢰를 흔드는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지적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과 약달러 기조는 오히려 각국의 탈달러화를 촉진하고 있으며, 미국은 동맹국들이 느끼는 '헤게모니에 대한 애증'을 직시해야 한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한국에 대해서도 그는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자 아시아 독재국들에 맞서는 보루"라며 향후 달러 블록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나라로 평가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조선업 육성을 위해 한국의 도움이 필요함을 알면서도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려는 것은 모순된 태도라고 비판한다.

한편 암호화폐나 디지털 통화가 달러의 지위를 위협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이미 시장 규모가 20조달러에 달하지만, 과세와 통화 정책을 흔들 만큼 제도적 영향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폐를 나무껍질로 만들던 몽골의 화폐도 그 뒤에는 쿠빌라이 칸의 권력이 있었다"며 화폐의 힘은 언제나 제국의 힘과 함께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책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달러의 패권은 이미 내리막길에 들어섰고, 트럼프식 정책 오판이 이어진다면 그 몰락은 예상보다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와 경험을 토대로, 복잡한 국제 거시경제의 흐름을 생생하게 풀어내며 세계 통화 질서의 변화를 조망한다.

달러 이후의 질서 | 케네스 로고프 지음 | 윌북 | 456쪽 | 2만9800원

문화스포츠팀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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