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희기자
시중은행들이 1년여 만에 예금금리를 소폭 인상했지만 예대금리차(대출금리-수신금리 차이)는 더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금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장금리 상승이 예금금리에 반영됐지만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로 대출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다. 예대금리차는 3개월 연속 확대됐고, 향후에도 예대금리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대출 수요자들의 이자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시중 5대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정기예금 금리를 0.02~0.05%포인트 인상했다. KB국민은행은 예금 대표 상품인 'KB Star 정기예금' 금리를 기존 2.45%에서 0.05%포인트 올렸다. 신한은행도 1년 만기 '쏠편한 정기예금' 금리를 2.45%에서 2.50%로 인상했다. 하나은행은 '하나의 정기예금' 최고 금리를 기존 2.50%에서 2.55%로 올렸다. 우리은행은 1년 만기 'WON플러스 예금'을 0.05%포인트 인상해 2.50%를 제공한다. NH농협은행은 'NH올원e예금' 금리를 기존 2.53%에서 2.55%로 0.02%포인트 올렸다. 이는 지난해 6월 이후 1년3개월 만의 인상이다.
금리 인하기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이 예금금리를 인상한 배경에는 시장금리 인상에 따른 조정이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와 별개로 은행의 예금금리는 채권금리 등 시장금리에 직접적으로 연동된다. 미국 금리 불확실성, 국채 발행 물량 증가 등에 따라 최근 중장기 시장금리가 들썩이면서 예금금리도 조정된 것이다.
수신경쟁도 예금금리 인상의 이유로 꼽힌다. 통상 연말로 갈수록 기업들의 자금 수요도 늘고, 가계대출도 늘어 수신확보 경쟁이 치열해진다. 은행입장에서는 예금을 더 확보해야 할 시기로, 고객이탈을 막기 위해 예금금리를 인상하기도 한다. 다만 예금자보호법 1억원 상향에 따른 머니무브를 우려한 조치는 아니라고 은행 측은 설명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에는 예금뿐 아니라 채권발행도 있는데, 이 은행채 금리가 최근 오르면서 예금금리도 올리게 된 것"이라며 "연말로 갈수록 은행에서는 나가야 할 자금이 많다 보니 수신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이지, 예금자보호법이나 정부의 예대금리차 확대 경고 등 다른 요인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은행권의 예금금리 인상이 예대금리차 확대 기조를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예금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예대금리차가 더 벌어졌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시중 5대 은행의 지난 8월 신규 취급 기준 가계 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는 평균 1.48%포인트로 집계됐다. 전월 1.468%포인트 대비 0.01%포인트 확대되며 3개월 연속 상승세다. 은행별 예대금리차는 농협은행이 1.66%포인트로 가장 컸고 이어 신한은행(1.50%포인트), 국민은행(1.44%포인트), 하나은행(1.43%포인트), 우리은행(1.37%포인트) 순이었다.
문제는 앞으로도 예대금리차 확대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국내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기조를 강화하면서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쉽게 내리지 않고 있다.
또 새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 전환의 일환으로, 신규 주택담보대출 취급분부터 위험가중치 하한이 15%에서 20%로 상향됐다. 이로 인해 은행이 신규 주담대 취급 시 금리를 높일 유인이 커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예금금리 인상이 이뤄졌지만 예대금리차를 줄이기에는 미미한 수준 수준인 데다, 가계부채 불씨가 남아 있는 만큼 대출금리가 내려가기는 어렵다"며 "주담대 위험가중치 조정은 건전성 관리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나, 대출 수요자들에겐 금리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