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교기자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와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을 지낸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가 지난 반세기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4인 가족 신도시' 모델의 한계를 진단하고, 미래 도시가 나아갈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콤팩트 도시'와 '지분적립형 주택'이다. 서울의 물리적 한계와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해법으로 설명했다.
제21회 인천 아시아 건축사대회' 특별강연에 나선 김세용 고려대 교수. 대한건축사협회.
김 교수는 12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제21회 인천 아시아 건축사대회' 특별강연에서 "20세기 신도시 모델이 자동차 대중화와 4인 중심 핵가족을 전제로 탄생했지만, 이제 그 전제가 모두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전체 가구의 70%에 육박하는 1~2인 가구는 더 이상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하며 신도시에 거주할 이유가 없으며, 직장과 가까운 도심에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문제는 서울의 물리적 공간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서울은 북쪽에 산이 많고 남쪽은 그린벨트로 막혀 있어 더 이상 확장할 택지가 없다"며 "가장 쉬운 해법은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밀어버리는 것이지만, 이는 막대한 인프라 비용을 유발하는 과거의 방식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가 제시한 것이 '콤팩트 도시'다. 도시를 외곽으로 확장하는 대신, 도심 내에 잠자고 있는 저이용·유휴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해 주택과 인프라를 공급하는 구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부간선도로 위에 주택을 짓는 '신내4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이다. 신내IC~중랑IC 사이 북부간선도로 상부에 인공대지를 조성, 788가구 규모의 공공주택이 들어설 계획이다. 이런 방법을 이용하면 토지 매입비 없이 저렴한 주택 공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외에도 버스차고지, 빗물펌프장, 주민센터 등 도심 역세권의 저층 공공시설을 고밀 복합 개발한 사례를 제시했다.
제21회 인천 아시아 건축사대회' 특별강연에 나선 김세용 고려대 교수. 대한건축사협회.
콤팩트 도시가 공간이라는 하드웨어적 해법이라면, '지분적립형 주택'은 금융이라는 소프트웨어적 해법이다. 이 모델은 2019년을 전후로 30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의 주역으로 떠오르던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김 교수가 GH 사장 시절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사업 중 하나가 지분적립형 주택이다.
지분적립형 주택은 주택 구매자가 전체 분양가의 20%만 납부하고 등기를 이전받아 입주하는 것이다. 나머지 80%의 지분은 공공기관이 보유한다. 입주자는 20년에서 25년에 걸쳐 4년에 한 번씩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 소유권을 100% 취득하게 된다. 최근 정부가 9·7 대책에서 공적 주택의 대폭 확대를 예고했기에 지분 적립형 주택이 향후 공급유형 중 하나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김 교수는 "임대주택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청년 세대에게 안정적인 자가 소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무리한 대출 없이도 자가 소유로 진입할 수 있는 현실적인 주거 사다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학계와 공공기관, 정부 정책 자문기구를 넘나들며 도시계획 및 주택 정책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고려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과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고려대 대학원에서 건축공학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이론적 기반을 다졌고, SH와 GH 사장을 역임하여 이론을 정책 현장에 접목했다. 최근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국가 정책 수립에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