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배당세제 개편 앞서 국민 절세계좌부터 키워야

노후 대비·자산 형성 위한 세제정책 순서 바로잡아야
배당 분리과세보다 ISA 등 장기 투자 기반이 먼저

한국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기대수명의 증가로 은퇴 후 소득 공백 기간도 길어졌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만으로는 안정적인 노후를 대비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민 스스로 자산을 운용하고 장기적인 소득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최근 배당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이다. 투자자는 배당을 통해 안정적인 이익을 얻고 기업은 배당을 늘려 투자 매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의도와 별개로 시행 방식과 효과는 신중히 따져야 한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겉으로는 모든 투자자에게 유익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소득·고액 자산가에게 더 유리한 구조다. 현행 세법상 금융소득(이자·배당)이 연간 2000만원을 초과하면 초과분에 대해 종합소득으로 합산해 6.6%에서 최고 49.5%까지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반면 분리과세가 허용되면 일정 금액까지는 금융소득이 높아도 15.4%(지방세 포함)로 과세가 끝난다. 고액 투자자일수록 절세 효과가 크고 일반 국민은 투자 규모가 작아 세제 혜택을 실질적으로 체감하기 어렵다. 세금 혜택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면 조세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극복하고 국민의 자산 형성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논의하기 전에 장기 투자 기반부터 마련해야 한다.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세액공제 한도는 이미 많은 근로자가 채워 추가 유인을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도 확대 등 폭넓은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감세가 아니라 국민의 노후 대비와 재산 형성을 위한 정책적 장치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도 적극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ISA는 일정 수익까지 비과세 혜택을 제공하는 금융 계좌로, 정부가 국민의 자산 운용 방식을 유도하는 정책적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소득과 무관하게 누구나 가입할 수 있어 중산층 이하 소액 투자자에게도 실질적인 절세 효과를 제공한다. 납입 한도와 투자 자산의 폭을 넓히고 장기 투자에 유리한 구조로 보완한다면 국민 자산 형성의 토대가 될 수 있다.

해외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의 NISA(소액투자 비과세 계좌)는 단기적 감세가 아니라 장기 투자 유도를 위한 국가 전략이었다. 일본은 '신(新)NISA'로 제도를 개편해 비과세 한도를 대폭 늘리고 비과세 기간 제한도 없앴다. 그 결과 국민의 투자 참여가 확대됐고 자본 시장 활성화와 노후자산 형성을 동시에 끌어냈다. 영국의 ISA도 계좌 단위 절세 혜택을 모든 국민에게 제공해 조세 형평성과 시장 안정성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

국민의 자산 형성과 자본 시장 체질 개선이라는 근본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제도적 기반부터 정비해야 한다. 비과세 한도를 확대하고, 투자 자산의 선택폭을 넓히며, 장기 투자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를 촘촘하게 설계해 ISA를 국민 절세 계좌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 기반 위에서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같은 유인책을 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의 철학을 담기 위해선 방향도 중요하지만 실행의 순서를 따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경제금융부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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