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주기자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이 투자·대출 대상의 탄소배출량을 쉽게 계산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또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를 여신분야에 적용한 녹색여신 관리지침을 마련하고, 기후 변화가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기후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금융연구원, 은행연합회, 손해보험협회, 산업은행, 기업은행, 보험연구원, 딜로이트 등과 함께 '제6차 기후금융 회의'를 개최했다고 12일 밝혔다. 올해의 마지막 회의인 이날 회의에선 ?기후금융 공급확대 ?기후금융 역량제고 ?기후금융 인프라 확충 등 그간 논의된 주요 정책과제들을 정리하고 논의성과를 공유했다. 기후금융TF는 미래대응금융 TF의 3개 분과(인구·기후·기술) 중 하나로 전 금융권의 중장기 기후금융 정책과제를 발굴, 논의해 왔다.
금융위는 지난 3월 발표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지원 확대방안'에 따라 지난 10월 말까지 기후분야에 정책금융 54조원을 공급했다. 이는 첫 해 목표 48조6000억원을 초과 달성한 수준이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설비투자 지원을 위한 미래에너지펀드 1조2600억원 조성을 완료했고, 기후기술펀드도 3600억원 규모로 조성 중이다.
아울러 금융권 금융배출량을 산출할 수 있는 플랫폼도 구축하기로 했다. 금융배출량이란 금융사가 투자·대출 등 금융활동을 통해 거래상대의 탄소배출에 간접적으로 기여한 부분을 말한다. 주요 글로벌 투자자들은 국내 금융사를 비롯한 피투자기업에 기후변화 관련 위험·기회 및 재무적 영향에 대한 공시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금융위는 기후금융TF를 중심으로 '금융배출량 워킹그룹'을 발족하고 신용정보원 인프라를 활용한 '금융배출량 플랫폼' 구축을 추진한다. 플랫폼을 통해 표준 금융배출량 산정 가이드라인과 금융배출량 산정에 필요한 데이터를 금융사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금융권은 투자·대출 대상의 탄소배출량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비용과 시간이 과도하게 소요된다는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글로벌 표준 금융배출량 산출식이 없어 금융사별로 각기 다른 기준으로 금융배출량을 산정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여신에 적용하기 위해 금융당국과 환경부가 '녹색여신 관리지침'을 제정했다. 녹색분류체계는 친환경 녹색 경제활동의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환경부가 2021년 제정했다. 금융당국과 환경부는 금융권 현장에서 녹색분류체계 적용을 보다 용이하게 하고자 2022년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에는 금융사가 취급하는 여신이 '녹색 경제활동에 적합한지'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녹색여신 관리지침'을 제정하면서 녹색금융이 활성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자 했다.
금융권의 기후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금융당국과 한은이 금융사 15곳과 함께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도 실시하고 있다. 이 테스트는 기후변화에 따른 금융리스크의 충격과 금융사의 손실흡수능력을 측정하고 기후리스크가 금융권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최종 결과는 내년 1분기에 발표할 예정이다.
내년 기후금융TF에선 유럽연합(EU)·일본 등이 도입한 '전환금융'을 참고해 우리 경제구조에 맞는 녹색금융을 추진할 예정이다. 단기적으로 고탄소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되, 장기적으론 탄소중립 경제로의 유연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한국형 전환금융'을 논의키로 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과 화석에너지 비중이 높은 까닭에 녹색금융을 엄격히 추진하면 오히려 탄소 고착화 등 한계가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투자·대출 대상이 녹색 경제활동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할 전문인력 및 평가기관을 확충하기 위해 금융인력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한 참석자들은 금융배출량 플랫폼 구축 이후 모인 정보를 활용해 중소기업의 탄소배출량 측정 및 감축 유인을 제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신진창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전환금융, 녹색금융 평가인력·기관 확충, 금융배출량 플랫폼 활성화 등 TF에서 논의된 과제를 중심으로 금융권 공동 워킹그룹(W/G)을 구성해 산업부·환경부 등 관계부처와 적극 협의하겠다"며 "내년에도 기후금융 확대방안에 따라 51조7000억원 규모의 공급 및 투자집행을 적극 추진하고, 기후금융 활성화를 위한 녹색예금·기후보험 등 다양한 금융상품 개발 및 인센티브 확충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