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정담]박지원 '국민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게 정치'

최고령 지역구 국회의원…"매일 2시간 걷는다"
건강 비결은 '4고'…잘 걷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말하고
'친구' 한덕수 향해 "국민 옆에 서라"
금도 넘는 정치권에 안타까움…"미풍양속 쇠퇴"

정치 9단'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최측근',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5선) 앞에 항상 붙어 다니는 수식어다. 국회의원은 물론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정보원 원장 등 다양한 경력에 더해 방송에 출연하며 촌철살인의 어법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22대 총선에서 해남·완도·진도 지역구에서 당선하면서 새로운 수식어가 하나 더 생겼다. 82세인 그는 '헌정사상 지역구 최고령 국회의원'이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국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인터뷰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오후 4시부터 90분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박 의원의 사무실(615호)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하면서 보도는 미뤄졌고, 26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 의원은 "저는 DJ로부터 상대에게 혼을 바치라고 배웠다. 제가 진심을 담지 않고 쇼를 하면, 국민이 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 의원이 의정 활동을 하면서 철칙으로 삼는 것 중 하나는 '금귀(金歸. 금요일에 지역구로 내려가는 것)'다. 토요일에 불가피한 일정이 있어도 밤늦게 지역구에 내려갔다가 일요일에 서울로 올라오는 일정을 빼놓지 않는다. 그는 "내가 걸어가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니고, 기차나 차가 실어다 주는데 괜찮다"며 "지역주민에게 약속했다. 그 약속을 깨면 문제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국회 경내를 걷고 있다. 김현민 기자

적지 않은 나이에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박 의원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4고'로 요약했다. 잘 걷고, 잘 먹고, 잘 자고, 참지 않고 말하고 지낸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잘 걷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미 매일 2시간 정도 여의도 주변을 걷는 걸로 정치권에 소문나 있다. 그는 "거의 매일 저녁 먹고 1시간30분 정도 걸은 뒤 30분 동안 스트레칭을 한다"며 "걷기가 제일 좋은 운동인 것 같다. 돈도 안 들고, 혼자 생각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요즘은 혼자서 걷진 않는다고 한다. 박 의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혼자 걷다가 누가 쥐어박으면 어떡해."

그의 목표는 건강하게 오래 일하는 것이다. "국민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게 정치"라며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인데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전쟁 없는 나라를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국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국회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지쳐 잠든 박 의원의 사진이 보도되며 화제가 됐었다. 박 의원은 정치 원로로서, 현 정국에 대한 사과의 뜻을 먼저 내비쳤다. 그는 "정치 일선에 선 사람으로서 불행한 역사를 살아가게 해 국민께 죄송하다"며 "하지만 비상계엄 선포 당시 총부리를 뚫고 국회로 와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는 등 국민과 함께 노력했다. 꼭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정국 수습을 위해서는 자신의 친구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과 한 대행은 김대중 정부 당시 각각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다. 한 대행은 이날 국회 추천 몫인 헌법재판관 세 명의 즉시 임명을 요구한 야당의 요구를 거부하고 여야가 합의하기 전까지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한 대행이 '바른길'에 서길 바란다고 말을 건넸다. 그는 "총리는 국민과 역사 앞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는다"며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돌아와 국민 옆에 서길 바란다. 윤 대통령과 손절하고 사과하고 재탄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가 아닌, 서로 대화하고 설득하던 과거를 그리워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지만, 여전히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상황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과거와 비교해 현재 정치는 투명해지고 더 열심히 해 좋은 방향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면서도 "정치의 본질인 여야 협상이나 미풍양속이 쇠퇴해서 아쉽다"고 토로했다. 그가 말하는 미풍양속은 여야 의원들이 밤에 여의도 인근의 포장마차에서 만나 한 잔 기울이면서 이견을 풀어가는 문화를 말한다. 박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여소야대 대통령이었지만, 여야 대표에게 전화하거나 청와대로 초청해서 설득했다. 과거의 정치는 금도를 지켰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국회 경내를 걷고 있다. 김현민 기자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고령에도 정정하다. 어떻게 건강을 관리하나.

▲4고를 한다. 잘 걷고, 잘 먹고, 잘 자고, 참지 않고 말하고. 참으면 암 걸린다. 나는 뭐든지 잘 먹는다. 다만 이제는 체중 때문에 먹는 걸 줄이려고 한다. 그리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두 시간씩 걷는다.

매일 걷는다고 들었다.

▲거의 매일 걷는다. 여의도 공원도 걷고, 산도 걷는다. 1시간 30분을 걷고 30분은 스트레칭을 하는 식이다. 헬스장에 가서 일주일에 3번 개인 트레이닝도 받는다.

걷기가 왜 좋다고 생각하나?

▲제일 좋은 운동인 것 같다. 돈도 안 들고, 혼자 생각도 할 수 있다. 대신 혼자서는 못 걷고 젊은 후배가 도와준다. 혼자 걷다가 누가 쥐어박으면 어떡하나.

겨울에도 매일 걷나

▲얼음이 얼면 걷지 않는다. 늙으면 암보다 위험한 게 낙상이다. 전에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등산 갔다가 넘어져서 철심을 박았다. 이제야 그 철심을 뺐다.

나이도 있는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무슨 행사가 있으면 아침에 다 전화한다. 행사가 많은 날에는 60여통을 한다. 7개월째 하고 있는데 귀찮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아, 내가 나태해지는구나' 하면서 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일도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하려면 전화를 자주 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도 빠짐없이 하고 있다.

지금도 금요일에 지역구에 꼬박 가나?

▲올해 4월 10일 선거를 한 그 주부터 지난주까지 34번 했다. 한 번도 안 빠졌다. 토요일 집회를 하면 토요일 밤에 지역구에 내려갔다가 일요일에 올라온다. 나주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차로 갈아탄다. 내가 걸어가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니고 기차나 차가 실어다 주는데 -.

그래도 약속을 지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지역주민에게 약속했는데 그 하나의 약속마저 깬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나? 지켜야 한다.

김 전 대통령에게 배운 것 중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상대방에게 혼을 바쳐라. 네가 쇼하면 국민은 안다. 그러니 혼을 바쳐서 진지하게 하라.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국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1992년부터 이미 국회의원이었다. 과거와 비교해 요즘의 정치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정치가 투명해지고 열심히 하는 건 좋은 방향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정치의 본질인 여야 협상이나 미풍양속이 쇠퇴한 건 아쉽다. 여야는 낮에 싸워도 밤에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하고 그랬다. 지금은 그런 소통이 단절됐다.

미풍양속은 왜 사라졌나?

▲척박해졌다. 정부·여당이 다수 1당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협박하는 풍토는 처음 봤다. 김 전 대통령도 여소야대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여야 대표에게 전화하고 청와대에 초청해 예산안에 관해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게 도대체 뭐냐. 정치를 복원해야 하는데 미풍양속이 사라졌다.

요즘 정치를 보면 금도를 넘었다는 말이 나온다. 금도는 무엇인가?

▲본래 정치는 여야가 싸우는 것이다. 특히 야당은 반대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쟁은 나온다. 그래도 과거에는 금도를 서로 지켰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국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한 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한다고 밝혔고 야당은 탄핵 절차에 돌입한다고 한다.

▲한 대행을 탄핵해야 한다. 한 대행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입장을 발표한 후 환율시장이 휘청거렸다. 이것이 민심이다. 우리는 소신대로 탄핵해야 한다.

한 대행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주술 국가의 일원인 총리로서 국민과 역사 앞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바른길로 돌아와 국민 옆에 서주길 바란다.

국민의힘에게 바른길이란 무엇인가?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과 손절하고 국민 편에 서서 반성하고, 사과하고, 재탄생해야 한다. 내란 및 외환 수괴인 윤 대통령을 체포하는 데 협력하고 헌법재판관 임명에 동의해 헌법재판소 9인 체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사상 세 번째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정치 원로로서 어떤 소회가 드는가?

▲정치 일선에 선 사람으로서 불행한 역사를 살아가게 해 국민께 죄송하다. 하지만 이런 진통을 극복해야 한다. 이달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총부리를 뚫고 국회로 와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고 탄핵소추안 가결을 성사하듯 국민과 함께 노력해 민주주의를 회복할 것이다. 아울러 민생 경제와 남북 관계, 외교를 살려야 한다.

정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목표는 무엇인가.

▲결국 국민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게 정치 아니겠나. 과거에는 백성이 배부르고 등 따뜻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런 국민이 없다. 이제 국가가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분단국가기에 남북 관계를 개선해서 전쟁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반드시 북한과 정상회담을 할 것이다. 그 전에 북한은 제7차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다.

개인적 목표는 무엇인가.

▲건강하게 오래 일하면 좋겠다. 내가 지금 국회의장을 하겠나? 전남도지사도 나오라는데 안 하겠다고 했다.

사후 묘비명에 뭐라고 기록되기를 원하는가.

▲초대 평양 대사를 꿈꿨던 인물.

대담=소종섭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정리=공병선 기자

정치부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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