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슬기나기자
"4년 전보다 지금이 더 나은가요? 해리스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부통령입니다. 넌 해고야!"
"의심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깁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기 위해 여기 있다."
미국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을 5일 앞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오후 격전지인 네바다주에서 맞붙었다. 올해 대선을 좌우할 7개 경합주 중 한 곳인 네바다는 선거인단이 6명으로 경합주 중에서도 가장 적지만, 현재 두 후보가 지지율 동률을 나타내고 있는 곳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네바다 헨더슨에서 진행된 유세에 참석해 "아주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하고 싶다"며 "4년 전보다 지금이 더 나은가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아니오(No)'라는 외침이 뒤따랐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유세를 시작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문장 중 하나다. 최근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연설에서도 초반부터 이 질문을 던졌었다. 과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0년 대선을 앞둔 마지막 토론에서 한 발언을 따라한 것으로, 당시 이 질문은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유권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레이건의 대선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동일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현재 미국의 상황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즉각 경쟁자인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비난으로 주제를 돌렸다. 그는 "그녀(해리스)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부통령"이라며 "카멀라. 넌 해고야! 꺼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녀는 모든 것에 거짓말을 한다"며 "사기꾼 힐러리(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경쟁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보다 더 나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해리스 부통령이 선서를 위반하고 베네수엘라 등 전 세계 감옥, 정신병원에서 갱단과 범죄자를 수입해오고 있다고 익숙한 공세를 펼쳤다. 현장에서는 불법이민자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 관련 영상이 공개됐다. 일간 가디언은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이 전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입은 것과 비슷한 작업용 조끼를 착용 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위스콘신에서 해당 조끼를 입은 채 쓰레기 수거용 트럭을 타고 기자들 앞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었다. 이는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쓰레기'에 빗댄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 데 따른 반박성 퍼포먼스였다.
불과 5일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이 여전히 초박빙 구도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마지막 주간 캠페인을 경합주 유세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 밤에는 또 다른 경합주인 애리조나주 글렌데일로 이동해 유세에 나설 예정이다. 같은날 그는 민주당 강세지역인 뉴멕시코주도 찾았다. 뉴멕시코주는 2008년부터 민주당 후보가 계속 승리한 지역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나는 국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카멀라 재임 중에 1만명 이상의 유죄 선고 범죄자, 수많은 불법 외국갱단이 국경을 넘어 뉴멕시코로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시간 해리스 부통령 역시 네바다주 리노를 찾았다. 무대 위에 오른 그는 "미국에는 새로운 세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나는 그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대선을 앞두고 생일을 맞이해 60세가 된 해리스 부통령은 경쟁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78세)보다 18세 어리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 배경이 됐던 고령 리스크 공격이 이제 트럼프 전 대통령측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 자리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 위협'으로 규정하는 한편,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지 않고도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권리"라고 말했다. 한 지지자가 '우리가 당신을 지키겠다'고 외치자, "그리고 나는 당신을 지키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아울러 해리스 부통령은 상식적인 해결책, 공통점을 찾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도 부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싶어하는 반면, 자신은 그들에게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고 싶다는 단골 멘트도 반복했다. 그는 "우리가 싸우면 이긴다"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다만 이날 연설 도중에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정책에 반발하는 시위대의 방해도 몇차례 확인됐다. 일간 가디언은 최소한 세 번 이상 해리스 부통령의 연설을 방해했고, 최소 1명은 가자지구에 대해 외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즉각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로 이동해 또 다른 유세와 콘서트에 참석한다. 콘서트에는 팝가수 제니퍼 로페즈, 멕시코 밴드 마나 등이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같은 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LA레이커스 소속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 이코노미스트 등은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공식 지지를 선언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네바다주에 앞서 남부 경합주인 애리조나를 찾은 자리에서도 민주주의 위기를 부각하며 투표를 독려했다. 그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 중 하나가 5일 남았다"며 "트럼프는 불안정하고, 복수에 집착하며, 불만이 가득하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탐하는 인물이다. 그의 유세는 증오, 분열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트럼프는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와 주체성을 가져야한다고 믿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에 앞서 같은 날 오전에 진행된 위스콘신주 기자회견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좋아하든 싫어하든 여성을 보호하겠다'는 발언을 거론하면서 "여성의 주체성, 권위, 권리, 자기결정권 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모욕적"이라고 비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