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욱기자
"키트, 도와줘!" 1980년대 중후반 국내에서 절찬리에 방영됐던 미국 드라마 ‘전격 Z작전’에 자주 나오던 대사다. 키트(Kitt)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최첨단 자율주행차로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구해주면서 주인공보다 더 주목받는 미친 존재감을 자랑했다. 공중으로 도약할 수 있는 터보 부스터를 장착하고 화염방사기, 최루가스, 레이저까지 발사하는 만능 슈퍼카였다. 또 범인들에 대한 정보를 단 몇 초 만에 찾아내어 수사를 돕고, 전화선을 침투해 목소리 변조로 범인을 교란하는 AI 에이전트이기도 했다.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AI 비서 '자비스(JARVIS)'는 키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자비스는 주인공의 말리부 저택 관리나 비서 역할은 물론 해킹과 아이언맨의 전투마저 보조하며 비서이자 오른팔 역할을 수행하며 수많은 메카닉+IT(information technology) 덕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키트와 자비스가 곧 나타날 전망이다.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들은 현재 너나 할 것 없이 AI 에이전트 개발에 뛰어든 상황이다.
구글은 ‘프로젝트 자비스’라는 코드명으로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있다. 아이언맨의 자비스에서 따온 이름이다. 자비스는 연구 데이터 수집, 제품 구매, 항공편 예약 등의 작업을 대신한다. 또 사람 명령에 따라 컴퓨터 화면에 있는 내용을 스크린샷으로 찍고, 이를 스스로 해석해 버튼을 클릭하거나 텍스트를 입력할 수 있다. 프로젝트 자비스는 이르면 12월에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도 커서 이동, 클릭, 텍스트 입력 및 기타 작업을 스스로 수행하도록 하는 비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오픈AI의 대항마로 거론되는 스타트업 앤스로픽은 지난달 22일 AI 에이전트 ‘컴퓨터 유스’의 테스트 버전을 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함으로써 개인·부서를 대신해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실행할 수 있는 AI 자율 비서 기능을 발표했다.
AI 비서 혹은 에이전트는 현재 생성 AI 개발 및 서비스화의 궁극적 목표로 꼽힌다. 텍스트와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등 그간 개발해 온 다양한 유형의 데이터를 입·출력할 수 있는 ‘멀티 모달(Multi Modal)’ 생성 AI를 한꺼번에 적용해야만 가능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2022년 오픈AI 챗GPT 등장을 기점으로 생성형 AI와 거대언어모델이라는 ‘기술’ 경쟁에 이어, 이제는 이를 활용한 ‘서비스’에 대한 경쟁에도 불이 붙은 모습이다. 지금까지 IT 업계에서 게임체인저가 되는 기업은 서비스를 선점한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국제 시장 조사기관 글로벌인포메이션은 지난해 41억달러(약 6조원) 규모였던 AI 에이전트 시장이 연평균 성장률 47.3%를 기록하며 2030년 618억달러(약 86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내년 10대 기술 트렌드 중 하나로 AI 에이전트를 선정했다. 특히 AI 에이전트를 통해 일상 업무를 결정하는 비율이 올해 0%에서 2028년에는 최소 15%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소한 향후 20~30년 동안의 시장 지배가 여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이 말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을 집필한 SF 소설의 거장, 아서 C. 클라크의 과학 3법칙 중 하나다. 자비스가 가정의 작업을 관리하고, 키트가 도로를 달릴 날이 머지않았다. 이런 일이 현실로 된다면 해리포터의 마법 지팡이가 부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