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기자
북한의 파병으로 북·러 군사동맹이 한층 강화된 가운데 북핵 억제를 둘러싼 서방 세력과 러시아의 마지막 남은 협상 테이블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전 승리를 위해 북한에 대해 견지했던 신중한 태도를 저버리고 있다"며 "북·러 군사 동맹이 최고 수준으로 격상하면서 북핵 문제를 두고 서방과 해온 공조마저 내던지는 분위기"라고 보도했다.
앞서 한국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미국, 우크라이나, 일본 등 정보당국은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전 지원을 위해 대규모 군대를 파병 중이라고 잇따라 확인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도 이날 "북한과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파병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에서 훈련받은 북한군 첫 번째 병력이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를 비롯한 전장에 배치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NYT는 "북한군 파병은 국제 관계 측면에서 러시아의 지형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푸틴이 고립된 것이나 다름없는 북한과 손을 잡음으로써 러시아가 북한의 핵 야욕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 중국 등과 협력하던 시대는 끝나게 됐다"고 평가했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러시아·아시아 관계 전문가인 알렉산더 가부에프도 "러시아 정책의 중대한 변화를 시사한다"며 러시아와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 사이의 균열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계속돼 미·중 갈등과 맞물린 지정학적 충돌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러시아가 북한을 비롯한 불량 국가들과 잇따라 관계를 밀착하면서 국제 사회의 지형 변화 가능성이 지속해서 제기돼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 장기화로 심각한 병력 및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움직임을 더욱 가속했다는 평가다. 특히 북한이 파병을 대가로 핵심 미사일 및 인공위성 기술이나 실전 전투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한반도 안보에도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는 북한의 파병을 '루비콘강을 건넌 일'이라고 묘사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에 식량이나 연료 등은 물론 미국의 방공시스템을 피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및 핵잠수함 등 첨단 군사 기술도 요구할 수 있다고 짚었다.
헤리티지 재단의 로버트 피터스 연구원도 "러시아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에 핵심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며 이것이 한미의 핵심 우려 사항이라고 진단했다. 피터슨 연구원은 또 러시아가 북한에 한미의 미사일 방공망을 뚫을 수 있는 다량의 미사일 발사 기술을 제공하거나 핵탄두 소형화를 통해 북한의 미사일 타격 정밀도를 높일 경우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