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기자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세계 최고 팀을 가리는 '2024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챔피언십(롤드컵)'이 주제곡 뮤직비디오의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영상에 등장하는 서양 선수들의 얼굴 모습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반면, 아시아계 선수들은 외꺼풀 눈에 개성이 없는 비슷한 얼굴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제작사 라이엇게임즈는 최근 대회 주제곡 '헤비 이즈 더 크라운(Heavy Is The Crown)'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이 노래는 인기 록 밴드인 린킨 파크가 불렀다. 원래 롤드컵 주제곡 뮤직 비디오는 지난해 우승팀의 서사를 중심으로 한 내용을 담아 왔다. 그런데 이번 뮤직비디오에는 지난해 우승팀인 T1 선수들의 모습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은 탓에 국내외 팬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팀 T1의 '구마유시' 이민형 선수는 진한 쌍꺼풀이 있지만 해당 뮤직비디오에선 외꺼풀로 그려져 다른 한국 선수들과 눈 모양이 같아지고 말았다. 선수의 얼굴 모습이 아니라 머리색이나 안경 착용 여부, 의상 등을 보고서야 겨우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선수들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팀 KT롤스터의 '데프트' 김혁규 선수는 개인방송에서 "뮤비를 봤는데 빈(중국 팀 빌리빌리 게이밍 소속) 선수라면서요, 나인 줄 알았어"라며 씁쓸해했다. 빈 선수 또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나도 처음엔 나인 줄 못 알아봤다"며 황당해했다. 미국의 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선수인 피터 펭은 유튜브 채널에서 "왜 모든 아시아 선수가 데프트 선수랑 똑같이 생겼냐. 인종차별 같다"고 지적했다.
반면 밴드 린킨 파크의 멤버들은 개성이 잘 드러나게 그려졌고 미국 팀 플라이퀘스트의 '마쑤', 독일 팀 지투 이스포츠의 '캡스'는 각자의 얼굴 생김새만으로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에 대해 e스포츠 팬들은 "지난해 대회 우승을 T1이 아니라 린킨 파크가 한 줄 알겠다"고 비꼬았다. 또 팬들은 지난해 T1의 우승 과정이 드라마틱했는데 뮤직비디오에 그 내용이 제대로 담기지 않은 것 때문에 더욱 아쉬워했다. 이 뮤직비디오는 공개 3일 만인 28일 오후 현재 조회 수 약 2300만회를 기록했다.
'동양인은 비슷하게 생겼다'는 대표적인 인종차별 중의 하나다. 지난 6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미드필더 로드리고 벤탄쿠르(우루과이)는 자국 매체와의 인터뷰 도중 팀 동료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농담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과했다.
당시 고향 우루과이에서 휴식 중이었던 벤탄쿠르는 자국 방송 프로그램인 '포르 라 카미세타(Por la camiseta)'에 출연했다. 벤탄쿠르는 진행자로부터 "나는 이미 당신의 유니폼을 갖고 있다. 내게 한국인(손흥민)의 유니폼을 가져다줬으면 한다"는 요청을 받자 "쏘니?(손흥민의 애칭)"라고 되물으며 "손흥민 사촌 유니폼을 가져다줘도 모를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손흥민이나 그의 사촌이나) 똑같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벤탄쿠르 발언은 곧바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손흥민의 팬들은 그의 발언을 두고 그동안 경기장에서 관중들의 인종차별 행위를 여러 차례 겪은 손흥민의 아픔을 고려하지 못한 부적절한 말이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벤탄쿠르는 자신의 SNS에 사과의 글을 남겼다.
그는 "쏘니(손흥민의 애칭)!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할게. 내가 한 말은 나쁜 농담이었어.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절대 무시하거나 상처를 주려고 한 말이 아니었어"라며 손흥민에게 사과했다. 벤탄크루는 손흥민과 평소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일부 팬들은 뮤직비디오 댓글난과 라이엇게임즈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영상을 다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남기고 있다. 이에 대해 라이엇게임즈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은 가운데 뮤직비디오 섬네일을 팀 T1의 '페이커' 이상혁 선수 얼굴로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