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라스코나 쇼베 동굴에서 발견된 석기시대 벽화들은 다양한 동물들, 그리고 그런 동물들을 사냥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인도 중부 빔베트카 동굴에서 발견된 약 4만년 전 벽화는 다르다. 열다섯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일렬로 서있다. 두 줄로 서있는 거 같기도 하고, 서로를 마주보며 큰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케이팝 그룹의 '칼안무'를 보는 듯한 이 장면을 대부분 전문가들은 춤을 추는 사람들, 그러니까 인류 첫 무용수들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생긴다. 도대체 인간은 왜 춤을 추는 걸까? 춤이 인간에게 어떤 도움을 주길래 4만년전 인류는 춤추는 장면을 그렸던 걸까?
춤의 기원과 기능에 대한 완벽한 설명은 아쉽게도 불가능하다. 몸 자체를 '도구'로 사용하기에, 춤은 물질적 흔적이 남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적, 그리고 뇌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가설들은 세워볼 수 있겠다. 걸음에 필요한 다리 움직임 또는 무언가를 잡기 위한 손동작 같은 단순한 움직임과는 달리 춤에는 리듬과 반복성, 그리고 패턴과 흐름이 있다.
인도 중부 빕베트카 동굴에서 발견된 약 4만년 전 벽화.
특히 인간은 동물들 중 거의 유일하게 사전 학습이나 경험 없이도 '일동조화(entrainment)'라는현상을 보여준다. 리듬에 따라 자동으로 손가락을 두드리거나 사운드의 비트와 템포에 맞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다.
소리와 움직임을 동기화하는 순간 다음 소리를 몸으로 미리 예측할 수있다. 아직 보이지도 않는 맹수를 대비해 미리 도망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우리는 대부분 춤을 함께 춘다. 빔베트카 벽화에서 보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인류는 그룹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 걸까? 소리와 몸의 동기화로 시작된 춤이 어느 한 순간 몸과 몸 사이 동기화로 확장되었을 수있다고 가설해 볼 수 있다.
다른 포유동물들 같이 인간은 '모방학습'이 가능하다. 부모와 친구를 모방해 직접 경험해보지 못 한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학습 알고리즘이다.
덕분에 우연히 리듬을 잘 타는 사람을 주변 사람들이 모방하기 시작한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하나 벌어진다. 나와 타인의 움직임이 동기화 되는 순간 우리 뇌에서 '자아확장'이라는 착시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신생아는 자기 몸의 경계가 어디까지 인지 모른다. 하지만 점차 눈에 보이는 많은 움직임들 중 어떤 움직임은 본인 의지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이의 뇌는 학습하기 시작한다. 다른 이들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없지만, 나의 움직임은 예측 가능하다. 뇌과학적으로 '나'는 예측 가능한 모든 것들의 합집합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모방학습을 통해 여려 명의 동작이 동기화 된다면? 특히 움직임에 사운드의 비트와 리듬까지 따른다면, 이제 우리는 나 자신의 움직임만이 아닌 10명, 100명의 움직임까지도 예측할수 있다. 우리 뇌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나'다. 함께 춤을 추는 순간, 우리의 자아는 확장되고, '나'와 '우리'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그리고 '내'가 '우리'가 되는 순간 호모 사피엔스는 더 이상 한없이 나약한 동물이 아니다. 혼자서는 절대 이길 수 없었던 맹수도 10명이 동시에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다. 100명의 자아가 동기화 되면 매머드를 사냥할 수 있고, 동기화된 천만명의 자아는 제국을 세울 수 있다.
소리와 움직임의 일차원적인 동기화로 시작된 춤이야 말로 어쩌면 '인류문명'이라는 성공 스토리의 숨겨진 비법이었을 수도 있다. 모두가 함께 모여 춤을 추고 소통하는 방식을 찾아낸 호모 사피엔스는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 했던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는지도 모른다. 함께 모여 춤을 췄기에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