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교기자
실적도 주가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 국내에 상장된 벤처캐피털(VC) 얘기다. 대부분의 상장 VC 주가가 연초 대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적 역시 60% 이상이 올 상반기에 역성장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종가 기준 국내 증시에 상장된 VC 18곳 중 15곳의 주가는 지난 1월2일 종가와 비교해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초 대비 주가가 오른 VC는 우리기술투자(6810→7450원)와 DSC인베스트먼트(3150→3175원), 엠벤처투자(834→921원) 등 3곳뿐이다. 엠벤처투자는 2023년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이후 지난 3월부터 거래정지 중이다. 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올해 주가가 오른 VC는 우리기술투자와 DSC인베스트먼트 둘뿐이다.
VC는 국내 증시에서 인기가 없는 업종으로 분류된다. '위험 자본'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한데다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도 다른 업종과 비교해보면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투자금 회수(엑시트)나 대규모 신규 투자 소식이 들려올 때 주가가 반짝 뛰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고 보면 결국 제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플루토스는 주가 하락률이 68%에 달했으며, 대성창투(-40%)와 스톤브릿지벤처스(-39%), 캡스톤파트너스(-32%) 등도 하락률이 30%를 웃돌았다. 이들이 상장된 코스닥 지수가 올해 10%가량 떨어졌음을 고려하더라도 매우 큰 하락 폭이다.
결정적으로 실적 부진이 주가의 발목을 잡았다. 거래정지 중인 엠벤처투자를 제외한 나머지 17곳의 반기보고서를 종합하면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늘어난 곳은 절반에 못 미치는 7곳이다. 우리기술투자(472→966억), 나우IB(20→262억), 대성창투(-12→85억),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17→68억), 스톤브릿지벤처스(45→49억), 플루토스(-48억→40억), HB인베스트먼트(8→19억) 등이다. 나머지 11곳은 역성장했다. SV인베스트먼트(-27억)와 TS인베스트먼트(-21억)는 아예 적자로 전환했다.
VC의 실적은 벤처펀드의 평가이익과 엑시트를 통한 처분이익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평가이익의 경우 최근 시장의 한파로 벤처와 스타트업 기업가치(밸류)가 하락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아주IB투자의 노영철 경영본부장은 "유동성이 풍부했던 시절 고평가받았던 피투자기업들의 밸류가 낮아지고 있으며, 이는 평가이익과 직결된다"며 "예전에 수조원 가치를 자랑하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도 1조 미만으로 쪼그라든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수년 전 투자했던 기업이 현재는 낮아진 가치로 기업공개(IPO)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손실로 반영된다"고 덧붙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직원공제회와 공무원연금은 올해 VC 출자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기관투자자들의 보수적인 VC 출자 기조가 확인된 것이다. 다만 상반기 벤처투자조합 결성액이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한 2조3504억원을 기록하는 등 시장에 회복 조짐이 보이는 만큼 실적과 주가가 반등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이 9월부터 시작될 경우 금리인하가 유력하기 때문에 자금조달 측면에서 호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VC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