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해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1만여명이 사직하면서 발생한 의료 공백 상황이 20일로 6개월이 됐다. 전공의는 2월19일 동시에 사직서를 내고 다음 날 병원을 떠났다.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이탈한 의료 현장에선 응급·중환자가 신속히 진료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을 떠돌거나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대규모 의료 공백이 생겼다.
전공의를 향해 ‘면허 정지’라는 엄포까지 놓으며 복귀를 압박했던 정부가 이내 여러 회유책을 들고나왔지만, 소용없었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 기한을 늘리고 추가 모집까지 나섰지만 떠난 전공의는 돌아올 생각이 없는 가운데, 내년도 입시 일정이 시작되며 내년 의대 증원은 확정돼가는 모양새다. 반년째 격무에 시달린 의대 교수들마저 하나둘 병원을 떠나고, 누적된 적자에 수련병원은 고사 위기에 빠졌다. 전공의를 대신할 진료지원(PA) 간호사 합법화를 위해 간호법 통과 가시화되고 있으며, 의대 증원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입장에 변화는 없어 의정(醫政) 갈등이 합의점을 찾기는 더욱 요원할 전망이다.
정부와 대한의사협회는 필수·지역 의료 개선 등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해 1월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시작했다. 이는 2020년 ‘의대증원은 정부와 의료계가 협의해서 진행한다’는 의정합의에 따른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총 27차례 회의했으나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정부는 올 2월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어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원을 단독 발표했다.
2주일 뒤인 2월19일 전공의 1만여명이 사직서를 내고 다음 날 진료 현장을 떠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의료 공백 사태가 시작됐다. 정부는 2월 하순 보건의료재난 경보단계를 위기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해 비상진료체계 가동에 나섰다. 동시에 PA 간호사 시범사업을 추진하며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려 했다.
의료 공백과 함께 전문의 수련 시스템도 붕괴하기 시작됐다. 상반기 인턴 합격자 10명 중 9명 이상이 최종 등록하지 않았다. 매년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1년 단위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던 인턴 및 레지던트 연차별 계약 및 교육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 여파로 내년 이후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공급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인턴 수련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내년 상반기 레지던트 모집도 불가능하다.
정부는 3월20일 증원한 2000명을 전국 의대에 배분했다. 3월 말 주요 의과대학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며 증원 철회와 전공의 행정처분 철회 등을 요구했다. 의대 교수들은 단체 사직을 실행하지는 않았으나, 이후 누적된 체력 한계 등을 이유로 휴진 및 진료 조정 등을 통해 외래와 수술을 줄인 상태이다. 지방 의대를 중심으로 전임교원과 임상교원 상당수는 개인적으로 사직하고 병원을 떠났다.
총선 직전인 4월1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의 입장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의료개혁 담화를 생방송으로 직접 진행했다. 사흘 뒤에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공개로 만나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대화는 성과가 없었고, 박 위원장은 면담 뒤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후 의료사태에 대해 국민이나 의료계, 언론과 직접 대화한 바 없다.
정부는 4월25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특위)를 공식 출범시켰다. 하지만 의료계는 다른 형태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배정된 3석에 현재까지 위원을 추천하지 않고 있다.
이후 법적 다툼이 이어졌다.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등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배정 처분’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낸 것이다. 하지만 집행정지 신청은 지난 5월1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각하 내지 기각됐고, 대법원은 다음 달 이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는 2000명 증원의 법적 정당성이 확보됐다고 판단하고, "명분을 잃은 전공의가 자발적으로 복귀할 것"(정부 고위관계자)이라고 기대했다.
의료계는 ‘탕평’(드러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완강히 버텼다. 사직 전공의들은 정부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외면했다. 정부는 9월에 복귀하는 사직 전공의에 한해 수련 특례를 적용해준다고 했지만,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6일 마감한 하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자는 전국에서 125명에 그쳤다.
의대생들도 의사국가시험 거부를 통해 전공의와 연대 입장을 유지했다. 올해 국시 응시자는 총 364명이며, 이 가운데 본과 4학년 재학생은 159명뿐이었다. 전국 의대생은 1학기부터 일제히 휴학원을 내고 수업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는 학제 변경 등 여러 편법까지 동원하면서 이들의 집단 유급을 막으려고 하지만 9월까지 수업에 복귀하지 않으면 유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면 내년 의대 신입생까지 겹쳐서 정상적인 의대 수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비상진료체계 속에서 수련병원은 고사 위기에 빠졌다. 여의도성모병원은 경영난으로 병상 축소, 직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충남대병원과 세종충남대병원은 자본잠식에 빠졌다. 비상 상황을 버티기 어려운 지방병원 중 신규환자를 받지 않는 경우가 늘면서 최근에는 지방 환자가 서울 ‘빅5’ 등으로 올라오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의료개혁이 오히려 의료서비스 서울 집중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와중에 간호법의 국회 통과가 임박했다. 여야는 오는 28일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반면 의협은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간호법 통과는 의료인 간 업무 범위 구분 등에 있어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라며 "정권 퇴진 운동"(임현택 의협 회장)까지 언급하며 강경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대 의학교육 역량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을 둘러싼 논란도 벌어졌다. 의평원이 증원 의대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겠다고 하자, 교육부는 의평원이 이사회의 구성을 변경하거나 평가 기준·방법 및 절차 등을 변경할 때 교육부의 사전 심의 등을 받을 것을 권고한 것이다. 의평원은 이러한 권고가 의평원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의대 교육의 질을 하락시킬 것이란 입장이지만, 교육부는 의평원이 내년 3월까지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인정기관 취소도 가능하다며 압박하고 있다.
상황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지만 정부는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의료계 요구는 거부한다. 다음 달 발표하는 의료개혁 1차 실행 계획을 통해 사태를 타개하겠다는 복안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16일 국회 교육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 연석 청문회에서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한 정책을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빨리 논의해 다음 달 초에라도 1차 실행계획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실행계획은 ▲의료 인력 시스템 혁신 방안 ▲의료전달체계 개편 ▲중증·필수의료 집중 보상 ▲의료사고 해결의 투명성 제고 및 안전망 강화 등 크게 네 가지 분야를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의 대책이 현 의료 공백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전달체계 개편으로 중증·필수의료 중심 상급 종합병원이 된다면 병원 수익성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료 인력 시스템 혁신 방안에도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의료사고 해결 안전망 강화 방안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와중에 일부 전공의는 일반의로 병·의원 등에 재취업하기 시작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2일까지 레지던트 사직자 중 971명이 의료기관에 취업했는데, 이들 중 42%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나머지는 의원급에 취업했다.
한 상급병원 관계자는 "일단 로컬에 취직해 개원의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직 전공의(일반의)가 나중에 다시 수련병원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없다"며 "정부가 아무리 전문의 중심 병원, PA 중심 병원을 만들겠다고 해도 당장 내년부터 전문의 배출의 끊기는 셈이라 의료 공백 또한 장기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