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윤기자
영화 '와호장룡'과 '대취협'에 출연한 중국 액션 영화의 아이콘 배우 정패패(鄭佩佩·정페이페이)가 사망했다. 향년 78세.
17일(현지시간) 고인의 가족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소문이 사실임을 밝힌다. 우리의 어머니 정패패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집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고인은 2019년 신경 퇴행성 질환의 일종인 비정형 파킨슨병 증후군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고인이 비공식적으로는 피질기저핵변성(CBD)을 앓고 있었으며, 파킨슨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희귀질환이지만 현재 의학 기술로는 진행을 늦출 방법이 없었다고 밝혔다. 고인은 자신의 남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 투병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유족은 고인의 뇌를 희귀 질환 연구를 위해 뇌 지원 네트워크(BSN)에 기증했다.
정패패는 1946년 상하이에서 태어나 1962년 홍콩으로 이주했다. 부친이 잉크공장을 운영하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유년 시절 발레와 댄스에 재능을 보였다. 이후 쇼브라더스 스튜디오의 배우양성소 남국실험극단에 입학해 2년간 무술과 연기 수업을 통해 배우로 성장했고, 몇편의 영화 단역을 거쳐 1964년 영화 '정인석' 주연으로 데뷔했다.
1966년 출연한 호금전 감독의 영화 '대취협'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정패패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호 감독은 미술을 전공한 액션 문외한이었지만, 검술과 발레가 뛰어난 정패패를 기용해 자신이 좋아하는 베이징오페라의 형식과 음악을 마음껏 실험하며 전에 없던 새로운 액션영화를 세상에 선보였다.
이후 '서유기'(1966), '철선공주'(1966), '여걸비호'(1967), '홍콩야상곡'(1967) 등 쇼브라더스의 황금기 작품을 이끈 톱스타로 활약했다. 특히, 고인은 남성이 주도했던 무협영화에서 뛰어난 액션 실력으로 '검의 여왕', '여검객'이라 불리며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72년 쇼브라더스와 결별 후 1974년 골든하베스트사 제작 영화 '호변자'를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떠난 정패패는 결혼과 동시에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그는 네 자녀를 키우며 캘리포니아주립대 얼바인(UCI) 경영대학원을 졸업하는 등 영화계와는 한동안 거리가 있는 시간을 보냈다.
1980년대 말 다시 연기 활동을 시작했지만 다소 애매한 필모그래피를 이어가던 정패패는 2000년 이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영국 드라마 '릴팅' (2014)과 실사영화 '뮬란'(2020)이 고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