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피아노와 복싱을 시작했다. 이유는 꽤나 단순했는데,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였다. 로스쿨에서의 수험생활부터 로펌 등의 직장생활까지, 30대를 고스란히 바치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효율적인 삶’에 길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대신 꼭 효율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또 하나 들었던 생각은 나이 들수록 행복의 비결이 있다면, 잘하는 게 많아지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행복의 천재여서, 굳이 잘하는 게 없어도 매 순간의 행복을 누릴 줄 안다. 그에 비하면, 나이 들어가는 일은 행복과 기쁨을 점점 잃어가는 일인 것만 같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있는데 바로 ‘잘하는 것들’이다.
어린 시절에는 눈앞의 태양과 바다, 모래만 있으면 그 누구보다 행복한 어린이로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는 몇 년간 노력하여 피아노를 능숙하게 치게 된 기쁨이나, 책 한 권을 써내고 난 뒤의 성취감, 몇 달씩 단련한 신체로 구사하는 복싱의 즐거움 같은 것은 아직 알지 못한다. 나이 듦에는 확실히 나이 듦만의 장점이 있는데, 그 장점은 세월을 허비하지 않았다는 걸 전제로 한다.
기나긴 세월 동안, 우리가 한 명의 인간으로 태어나 나만이 잘하는 것들을 익혀나간다면, 우리는 어린 시절과는 다른 기쁨들을 아는, 성숙의 즐거움을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에는 넘볼 수 없었던 영어로 된 소설을 읽거나, 어려운 철학책을 무척 즐겁게 탐독할 만큼 지적 읽기에 익숙해질 수도 있다. 관련 없어 보이는 재료들을 하나씩 썰고 볶고 끓여서,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맛있게 먹는 요리를 해볼 수도 있다. 어릴 적에는 앉아서 듣기만 하던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나이듦의 행복에는 단순한 내려놓음이나 욕망을 멀리하며 얻게 되는 여러 평안 같은 상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걸 내려놓는 데서 오는 평안보다는, 조금씩 나아지며 성장하는 데서 오는 어른만의 기쁨을 더 알고 싶다고 느낀다. 그 기쁨은 단순히 어린 시절처럼 마냥 천진난만하게 뛰어놀거나 온갖 유행하는 것들을 무한하게 갈구하고 소비하며 얻는 쾌락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깊어지고 능숙해지며 그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해내고 삶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며 얻은 능숙과 성숙의 경지를 더 많이 알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나이 들어가면, 아침에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 몇 곡을 피아노로 치고, 니체의 후기 저작이나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해석하는 책을 읽으며, 아들이랑 탁구 치거나 복싱을 배우며, 인생을 거쳐 쌓아온 것들은 누릴 줄 아는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원하지 않는 건, 그냥 멍하니 종일 TV를 보거나 세월을 통해 쌓거나 성장한 것 없이 남은 나날들을 죽이는 것이다.
행복의 천재로 살면서, 지나가는 굼벵이 한 마리에도 웃을 수 있는 어린 나날들이 지나가면, 이제 행복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발굴하고 의지를 갖고 얻어야 하는 시절로 접어들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시절로 매일 더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내가 한평생 여한 없는 행복들을 잘 만들고 이 삶을 떠날 수 있었으면 한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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