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中의존도 높은 유럽, 관세부과는 美와 다른길

美, 중국산 제품에 폭탄 관세 예고
유럽에도 '무역장벽' 요청했지만
EU "맞춤형 접근 취할것" 선그어

독일, 최대 교역국 8년연속 중국
BMW·벤츠 판매 등 타격 불가피

中과 관세전쟁땐 인플레 재점화 우려
ECB 내달 첫번째 금리 인하도 앞둬
유럽기업들 "對中 폭탄 관세 반대"

미·중 무역갈등이 조 바이든 행정부 말기 들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딜레마'에 빠졌다. EU가 대서양 동맹인 미국의 기조에 맞춰 '중국 때리기'에 동참한다면 중국의 보복조치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 경우 미국에 비해 경제 성장이 크게 둔화한 유럽으로선 한층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탓이다. 특히 중국은 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저울질하는 유럽국가들의 분열을 파고드는 모습이다.

EU, 美 우려 공감하지만…"다른 접근 방식 취할 것"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사진)은 지난 21일(현지시간) 공개된 외신 인터뷰에서 중국 과잉 생산에 대한 미국의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광범위한 관세 부과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해 이목을 끌었다. 그는 "(EU의 경우 미국과는) 다른 접근 방식, 훨씬 더 맞춤형 접근 방식을 취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같은 날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독일을 찾아 "유럽이 미국과 함께 공동 전선으로 중국에 무역 장벽을 세우길 희망한다"고 말한 것에 선을 긋는 행보로 해석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많은 EU 관리들이 미국의 대중 접근 방식에 회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다양한 부문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만큼, 대중 관세장벽이 자칫 경제적 충격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최근 미국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태양광 패널, 선박, 철강 등 전 산업에 걸쳐 중국산 제품에 '폭탄 관세'를 예고했다. 중국 기업들이 정부로부터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받으며 전 세계 산업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일부 관세 인상 조치는 당장 8월부터 발효될 전망이다.

EU 역시 중국의 덤핑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태양광 패널 등 친환경 산업을 중심으로 저가 중국산 제품이 '쓰나미'처럼 몰려들며 자국 업계가 고사하고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EU는 지난해 10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를 착수했고, 7월부터 관련 조치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산 태양광 패널·풍력터빈·전동차·의료기기·석도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도 실시하고 있다.

EU, 中 의존도 높아…보복 관세로 타격 불가피

하지만 EU 산업구조상 중국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 딜레마다.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사무소의 '2023년 EU의 대중국 수출입 의존도'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9월 기준으로 중국이 EU의 전체 교역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6%로 미국(16.5%)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독일은 대중 관세 폭탄에 적극적으로 반대 표명을 하는 회원국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의 최대 교역국은 8년 연속 중국이 지키고 있다. 독일 자동차 업체인 BMW, 메르세데스 벤츠의 지난해 판매량 중 중국 비중은 각각 32%, 36%를 차지한다.

이미 중국은 EU에 보복관세도 예고한 상태다. 현재 2.5ℓ 이상 엔진을 장착한 EU산 대형 수입차를 상대로 현행 관세 15%를 최대 25%로 인상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당 소식이 알려진 지난 22일 유럽증시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BMW, 폭스바겐 주가는 일제히 급락했다.

키엘연구원에 따르면 EU가 중국과 완전한 상호 탈동조화(디커플링) 시 EU의 실질 소득은 5.3%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독일의 실질 소득은 6.9%로 감소 폭이 훨씬 더 컸다. 대중국 무역에 있어 EU 회원국 간 이해관계 충돌이 큰 탓에 실효성 있는 무역 장벽이 세워지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쏟아진다. EU의 중국산 전기차 추가 관세 조치가 현실화하더라도 미국의 관세율(100%)보다 훨씬 낮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EU를 둘러싼 경제성장 전망 역시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9년 이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약 9%를 기록한 반면, EU는 약 3%에 그쳤다. 또한 유럽의 1인당 GDP는 2019년 미국의 68% 수준에서 2029년 66%까지 낮아질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중국과 관세전쟁이 벌어질 경우 EU의 경제성장은 훨씬 둔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더욱이 중국은 유럽 국가 간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달 초 5년 만의 유럽 순방 일정지로 EU 회원국인 프랑스, 헝가리와 가입 후보국인 세르비아를 찾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 이들 3개국이 시 주석을 환대했고 시 주석 또한 현지 투자를 약속한 만큼, 3개국이 EU의 중국 때리기에 적극 동참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

EU, 인플레 재점화 우려…기업들 "관세전쟁 반대"

만약 EU가 중국과 관세 전쟁을 본격화할 경우 인플레이션 재점화 등 경제적 여파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EU 통계기구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달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4%(전년 대비)를 기록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나타냈다. 근원 CPI 상승률은 2.7%로 추가 완화세를 이어갔다. 반면 지난해 3·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유로존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0.3% 성장했다.

인플레이션 둔화와 경제 개선 조짐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시장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르면 내달 6일 첫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대중 무역전쟁이 발발할 경우 인플레이션 재점화로 ECB의 통화정책 향방에 새 변수가 되는 것은 물론,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EU가 특히 완성품 생산 비중이 높고 공급망 병목 현상에 취약하다는 점을 들어 중국이 중간재 수출에 제동을 걸 경우 기업들의 타격이 클 것이라는 분석도 쏟아진다.

대중국 폭탄 관세에 반대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기업 수장들도 확인된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스텔란티스의 카를로스 타바레스 최고경영자(CEO)는 한 외신 인터뷰에서 중국산 전기차 관세와 관련해 "서방 업체들이 되레 구조조정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경쟁사들과의 격전으로 생산은 물론, 일자리 등까지 부정적 여파를 입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중국의 비용 경쟁력 30% 우위에 맞서 싸우려면 사회적인 결과가 발생한다"면서 "그러나 유럽 정부들은 지금 당장 그런 현실에 직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제부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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