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짜리 시계 만드는 옻장인, 세계가 열광했다[K장인시대①]

메구로가조엔 옻칠 작품 3년 동안 복원
"옻칠 작품, 반만년 이상 아름다운 빛 유지"
우리 조상들이 구사했던 기법으로 새 길 제시
"얕은 술수 쓰지 않아야 완벽에 가까워져"

편집자주요즘 한국 노래, 드라마, 영화, 음식, 문화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먼저 세계 최고란 말을 들은 분야는 제조업이다. 한국산 TV, 반도체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세계 최고, 명품 소리를 들었다. 무형의 문화뿐 아니라 실제 물건을 만들 때도 한국인의 손은 현란하게 움직인다. 한국 장인들도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아시아경제는 한국 전통 제조 기술을 밑천 삼아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K 장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엘리베이터 장식 작품 샘플 안에 들어가서 선 옻칠 장인 전용복. 반려견 츄이가 따라 들어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옻은 옻나무에서 나오는 액체다. 방수성과 내구성, 접착력이 뛰어나다. 독한 약품에 담가도 변색하지 않는다. 선조들은 가구, 장신구 등에 칠했다. 세월이 흘러도 막 만든 듯한 광택을 냈다. 칠장 전용복(73)은 '생기'라고 표현했다.

"1만 년을 견디는 기운이죠. 옻만이 해낼 수 있어요. 널리 알리고 싶어 최근 영어 공부를 시작했죠. 통역이 붙으면 쪽팔리잖아요(웃음)."

일본의 유서 깊은 연회장인 메구로가조엔(目黑雅敍園)의 옻칠 작품들을 3년에 걸쳐 복원한 장인이다. 이와야마 칠예미술관을 7년 동안 운영하고, 제자들을 양성하는 등 다방면으로 옻칠의 우수성을 전파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과업이자 후예로서 도리라고 생각한다.

"서양의 유화 물감은 그 빛깔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요. 니스나 아교를 발라서 보존에 문제가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적어도 50년에 한 번꼴로 발라줘야 하니 원색이 필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죠. 아무리 명작이라도 빛이 바래 고전적 가치만 남게 되는 거예요. 옻칠은 달라요. 우리 선조들 작품을 보세요. 반만년 이상 아름다운 빛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어요. 경이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죠."

옻칠 장인 전용복 작가가 경기도 안성 작업실에서 '바람의 소리' 시리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경험에서 체득한 확신이다. 메구로가조엔은 거대한 옻칠 덩어리이자 예술 집합체다. 1991년 복원된 작품은 무려 5000여 점. 3년간 연인원 10만 명이 투입돼야 하는 엄청난 작업량이었다. 사용한 옻칠도 10t에 달했다.

전용복이 처음 의뢰받은 작품은 전체의 10분 1 정도였다. 작업하는 모습을 본 경영주들은 고무됐다. 3개월 만에 계획을 수정해 2000점 이상을 맡겼다. 복원과 관계없는 창작품도 주문했다. 그렇게 새로운 메구로가조엔 건립에 재활용된 미술품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쳤다.

알고 보면 작업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경영진에서 주문한 옻칠 엘리베이터 제작은 무리수였다. 미쓰비시 엘리베이터에서 화학 도료를 칠한 철판에 옻칠할 수 없었다. 마르기는 하겠으나 10년도 못 가서 변색하거나 벗겨질 게 불 보듯 뻔했다.

전용복은 기초 칠부터 맡겨 달라고 했다. 우리 조상들이 구사했던 기법이라 자신이 있었다. 손바닥 크기의 철판 수십 개를 실험용으로 만들어 옻칠하고 서로 다른 온도에서 말렸다. 3개월가량 실험해 270~280℃에서 가장 잘 굳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옻칠 장인 전용복의 손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난관은 하나 더 있었다. 엘리베이터 금속판은 실험용 철판과 달리 크기가 3m를 넘었다. 고온 경화가 가능한 요(숯·도자기·기와·벽돌 등을 구워내는 시설)가 필요했다.

전용복은 가와이무라 지역의 벽돌공장들을 수소문해 내화벽돌 6000장을 구했다. 밑바닥에 붉은 벽돌을 깔고 철판을 올린 뒤 지붕에 슬레이트를 얹었다. 벽에 세 군데 구멍을 뚫고 가스 불을 집어넣어 꽤 그럴듯한 요를 완성했다. 금속 옻칠을 고온 경화로 말린 뒤 급속도로 냉각시켜 단단한 옻칠 금속판을 만들었다.

전용복은 옻칠 엘리베이터 서른네 기를 제작했다. 메구로가조엔에서 보유한 그림 가운데 원화를 선택하고, 연수차 와 있던 미술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특수팀을 꾸렸다. 나전으로 해태·공작 등의 몸통 질감을 표현하고, 화려한 색상의 옻칠을 회화적 수법으로 발라 마무리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단순 이동 수단이 아닌 작은 갤러리로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옻칠 장인 전용복 작가를 경기도 안성 전용복 아트스페이스에서 만나 작품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엘리베이터에 타서 사방에 있는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근사하잖아요. 하루 수천 명이 이용하지만 지금도 조그마한 흠집 하나 없이 찬연히 빛나고 있어요.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귀중하게 여기고 조심해서 쓴다는 방증이겠죠. 1000년 이상 변함없이 빛날 거라고 확신해요. 승객의 인체도 보호할 거예요. 옻칠에서 몸에 유익한 바이오 물질이 나오거든요. 메구로가조엔 복원 공사 때 체감할 수 있었어요. 막바지 6개월 동안 거의 잠을 잘 수 없었는데 옻칠 방에서 나오는 엄청난 기(氣) 덕분에 견딜 수 있었죠. 지금도 침대 등 집안 곳곳에 옻칠이 있어요. 일흔세 살에도 분주하게 활동하는 비결이죠."

전용복은 그 뒤에도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현 티케이엘리베이터코리아) 등과 협업해 옻칠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다. 최근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게임 조직위원회로부터 주 경기장인 미즈노공원 육상경기장의 엘리베이터 제작을 의뢰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부산 협성마리나G7, 서울 용산구 목단가옥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당 가격은 실버스크린 250만~300만 원, 핸드프린팅 500만~1000만 원이다.

가장 가치가 높게 매겨진 작품은 시계다. 전용복은 고온 경화를 터득하며 충분한 가능성을 엿봤다. 3㎝ 정도 동판을 붙들고 6개월 이상 씨름해 샘플을 만들었다. 묵직한 해머로 내리쳐도 갈라지지 않는 내구성을 증명해내고 작업을 본격화했다. 제작한 샘플 시계는 세 종류. 모두 금으로 만든 직사각형 모델로, 옻칠로 만들어진 중존사 금색당을 모티브로 했다. 시계 판에는 금, 자개를 이용해 문양 서른네 개를 넣었다.

문제는 접착이었다. 칠을 열 번 정도 해도 잘 붙지 않았다. 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옻칠과 금판 사이에 비닐 같은 얇은 막이 있었다. 매스로 긁어보니 하얗게 굳은 기름이었다. 금판은 금을 조금씩 긁어내면서 형태를 만드는데, 작업한 회사에서 이때 묻은 기름을 긁어내지 않았다. 전용복은 유리 위에 옻칠해서 바짝 말리고 긁어둔 가루를 떠올렸다. 금판에 상처를 내고 그 가루를 틈 사이사이에 넣고 붙여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3년을 매달린 끝에 일반 고급 시계 스무 개, 최고급 시계 세 개, 최상급 시계 한 개를 만들었다. 이른바 '전용복 칠예 시리즈'다. 2008년 5월 메구로가조엔에서 처음 선보였다. 일반 고급 시계와 최고급 시계는 각각 370만 엔(약 3309만 원)과 1250만 엔(약 1억1180만 원)으로 책정돼 순식간에 팔렸다. 최상급 시계는 4개월이 지나 주인을 찾았다. 판매 가격은 5250만 엔(4억 6958만 원), 당시 원화로 약 8억4000만 원이었다.

전용복은 전자기타, 피아노, 바이올린 등에도 옻칠을 접목한다. 전자파를 흡수한다는 옻칠 특성에 착안해 지금도 다양한 응용을 시도한다. 그는 "이것이 바로 전통"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바람의 소리' 중 한 작품을 확대한 부분 모습

"시대와 맞물려 변화해야 해요. 단 전통을 악용해선 안 됩니다. 원칙을 지키면서 현재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해요. 이것이 조상들이 남겨주신 위대한 유산인 전통을 진정으로 이어가는 길입니다."

이제는 북미, 유럽에서도 알아본다. 옻칠하는 방법과 요령을 알려달라는 전화가 수시로 걸려 온다. 전용복은 다음 달부터 한동안 미국에 머문다. 갖가지 비법을 학문으로 정립해 미드웨스트대학교에서 가르친다.

스승의 부재에 제자들은 익숙하다. 이따금 점검받으며 작품 세계를 구체화해왔다.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옻칠이라고 하면 대다수는 나전을 떠올린다. 경기 안성에 있는 작업 공간(전용복 아트스페이스)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목재, 금속, 도자기, 천, 종이 등이 눈에 띈다.

전용복 작가가 아끼는 작품 중 하나인 '바람의 소리'

발상의 전환은 전용복의 진일보한 사상에서 비롯한다. 크기 3~4m의 패널 작업으로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했다. 풍요로운 색감과 날렵한 붓질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친다. 시작은 도자기였다. 여느 칠장처럼 가구공방을 운영했을 때다. 우연히 자료집에서 1200년 전 낙랑시대 작품을 보고 기묘한 감응을 느꼈다. 오랜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았으나 빛깔만큼은 영롱했다. 설명란에는 '토기나 도자기에 칠을 올리는 와태칠 기법'이라고 쓰여 있었다. 가르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문헌에 의존해 스스로 깨쳐야 했다.

전용복은 와태칠을 연구하면서 순수한 옻칠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색이 이탈하는 실패를 무수히 겪었으나 끝내 고온에서 말리는 비법을 알아냈다. 갓 구워낸 도자기에 유약을 바르지 않고 옻칠한 뒤 높은 열을 가해 말리는 '고온 경화'였다. 그렇게 빚어낸 작품들은 전시회 등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능성을 엿본 전용복은 가구에서 아예 손을 뗐다. 창작에만 전념하는 작가로 전향했다.

패널 작품들은 지난해 키아프 서울 글로벌 아트페어 등에 소개될 만큼 인기가 높다. 판매가는 1억~10억 원. 하나같이 서양화보다 현란한 색상을 자랑한다. 옻칠을 검은색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생경하게 느낀다. 옻칠 위에 무슨 물감을 발랐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사실 회화적 표현은 이미 선조들이 벽화나 불당 등에 탁월하게 구사했던 기법이다. 전용복은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업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옻칠 장인 전용복 작가가 경기도 안성 작업실에서 '바람의 소리' 시리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옛것을 지키는 분들도 대단하시죠. 정석은 분명 소중한 가치니까요. 그렇다고 그대로 따르지 않은 것의 가치를 깎아내릴 수는 없어요. 정석을 근거로 한 변형은 시대 흐름이에요. 예컨대 고려청자와 분청사기는 제작 기법부터 판이해요. 그런데 후자도 밑바탕은 청자토잖아요. 고려 말 청자로부터 변모·발전해 특색을 갖추게 된 셈이죠. 우리 민족은 그걸 500년 동안 생활 도구로 사용했고요. 그렇게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는 외로운 도전에서 전통을 깨우치기도 했다. 옻칠은 습기가 있어야 마른다. 많은 칠예 장인은 쭈글쭈글해지거나 잘 마르지 않을까 두려워 처음부터 물을 뿌린다. 석유를 타기도 한다. 그런데 순수한 옻칠은 물을 뿌리면 급히 마르면서 탄화작용을 일으킨다. 여러 색깔로 채색하고 급히 건조하는 경우 색상이 흉하게 변해버린다. 옻칠하기 전에 건조실에서 습기를 제거하고 천천히 말려야 한다.

전용복은 일본 이와테 현에 있는 공업기술연구센터에서 얻은 자료를 토대로 연구를 거듭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이 가르친 칠 정제법이나 건조법 등은 모두 우리 조상이 했던 방법이었다. 한일 강제 합병으로 국내에서 사라졌던 비법들을 그들이 체계적으로 정리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그 무렵 작업일지 한 귀퉁이에 다음과 같이 메모했다. 어쩌면 옻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비결일지 모른다.

옻칠 장인 전용복이 경기도 안성 전용복 아트스페이스에 걸린 대작들 앞에 섰다. 오른쪽은 연어를 추상해서 그린 '귀향', 왼쪽은 '우주'.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옻칠은 절대적으로 완벽을 요구한다. 디자인과 장식성 등 표현의 문제뿐만 아니라 옻칠이라는 소재의 완벽한 이해와 인식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편의를 위해 대충 넘어가거나 얕은 술수를 받아들이지 않아야만 옻칠이 가진 다양한 특질을 최대한 끌어내는 가능성이 생긴다.'

문화스포츠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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