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김현정특파원
지난 25일 개막한 베이징국제자동차전람회(베이징모터쇼)는 그야말로 '전기차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현장이었다. 완성차 업체 80여곳이 참가해 26일까지 단 이틀 동안 196차례의 콘퍼런스를 열었고, 117개 모델이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모두가 알법한 글로벌 업체들 대부분은 참가 업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및 미니(MINI), 아우디에서 폭스바겐, 도요타·렉서스, 혼다, 닛산·인피니티, GM, 포드·링컨, 볼보, 재규어랜드로버, 롤스로이스, 람보르기니까지 총출동했다. 한국의 현대·기아차는 베이징현대, 기아, 제네시스 세 개의 부스를 마련했다. 비용 대비 홍보 효과가 크지 않다는 판단 아래 글로벌 선두 업체들이 오프라인 모터쇼를 외면하던 분위기를, 베이징이 완전히 '역주행'한 셈이다.
어느 정도의 흥행인지 숫자로 설명하면 체감이 빠르다. 지난 2월 26일(현지시간)에서 3월3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던 제네바국제모터쇼에 참가한 완성차 업체는 단 6곳(르노, 다치아, MG, 비야디·BYD, 이스즈, 루시드)에 불과했다. 완성차 톱3 업체인 토요타, 폭스바겐, 현대차는 부스를 열지 않았다. 제네바모터쇼는 디트로이트(미국), 프랑크푸르트(독일), 파리(프랑스), 도쿄(일본)와 함께 '5대 모터쇼'로 꼽히는 업계 주요 행사다.
'북미 최대'를 표방하던 70년 전통의 디트로이트모터쇼는 소프트웨어(SW)를 전면에 내세우고 지난해 IAA모빌리티로 이름을 바꿔 독일 뮌헨에서 개최하며 겨우 명맥을 유지했고, 2022년 파리모터쇼는 통상 2주였던 전시 기간을 5일로 줄였고, 행사장 면적도 기존의 절반까지 축소했다. 파리모터쇼에 참여한 완성차 업체는 푸조, 르노, 지프, BYD, 창청, 빈테스트 등 6곳뿐이었다. '5대 모터쇼'라는 영광은 옛말이 됐고, 이제는 존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이다.
전통 강호의 무대에는 시큰둥했던 업체들이 베이징으로 앞다퉈 달려갔다는 사실은 최근 몇 년 사이 업계에 벌어진 지각변동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 세계 자동차 수요는 신에너지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고, 관련 시장은 완성차에서 배터리 등 주요 부품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자리를 굳힌 상태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60%에 육박하는 841만대가 팔렸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18% 이상 증가해 1000만대에 육박하는 전기차가 팔릴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과 수요, 모두가 갖춰진 시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차 그룹이 1200명에 달하는 직원을 현장에 보내 상황을 직시하게 한 점은 고무적이다. 그간 한국 대표 완성차 업체로서 중국 시장에서 보여준 의아한 마케팅과 신차 출시 타이밍은 중국의 현재를 조직의 일부가 충분히 몰랐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열흘 이내의 짧은 시간이지만, 중국의 전기차 굴기와 그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귀한 경험이다. 신에너지차 분야에서만큼은 결코 버리거나 포기하거나 내버려 둘 수 없는 중국 시장에서의 선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