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많은 日…직장인 고립에 집중한 이유[청년고립24시]

<6> 세계는 고립 문제 어떻게 풀고 있나
②日 최대 싱크탱크 노무라종합연구소
20·30대 직장인 고립 조사 공동 연구
사카타 아이·와카코 타치바나 컨설턴트 인터뷰
"기업이 외로움 해결 주체돼야"

"외로움을 느낀다고 대답한 20·30대의 70%가 직장인이었습니다." 일본 최대 싱크탱크 노무라종합연구소(NRI)는 지난해 11월 20·30대 직장인의 고립을 주제로 보고서를 발간했다. '지금이야말로 기업이 마주해야 할 청년의 외로움'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발표와 동시에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동안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에 대해 다룬 연구는 많았으나, 가장 활발히 사회·경제활동에 나서는 젊은 직장인의 고립감에 대해 조명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공동 연구자인 사카타 아이·와카코 타치바나 NRI 사회시스템컨설팅부 시니어 컨설턴트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의 고독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단결근이나 은둔, 자해 등 가시적인 징후가 없기 때문에 일상 고립은 계속해서 관심의 대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이를 해결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두 사람은 "20·30대 직장인은 취업 지원이나 육아 지원 등이 아니라면 지방자치단체 서비스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 하루 10시간 넘게 시간을 보내는 기업이 나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 사회시스템컨설팅부의 사카타 아이(왼쪽)·와카코 타치바나 시니어 컨설턴트.(사진출처=노무라종합연구소)

-히키코모리 대신 20·30세대 직장인 고립에 초점 맞춘 이유는?

▲히키코모리는 학교나 직장에 나가지 않는 등 증상이 이미 나타난 단계라 볼 수 있다. 그간 히키코모리에 대한 대처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그런 증상이 나타나기 전 일상 고립에 집중해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일본은 2021년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고독 담당 장관을 신설한 국가지만, 여전히 정책은 (고독사 등) 노년층에 머물러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히키코모리와 노년층에 집중하다 보니 결국 20·30대 직장인은 고립 문제에서 정책 대상으로 잘 다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언론을 비롯해 대다수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년들은 공적 지원을 받을 접점이 거의 없다.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 담당자가 "기업에서 일하는 청년일수록 접근이 어렵다. 지역 행사에도 안 나오니 평소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모이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세 번 번화가에 나가 길가는 청년을 붙잡고 물어보는 게 유일한 실태 파악의 방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청년들은 더욱 외로움에 빠지기 쉽다. 연구 결과 '타인과 나를 얼마나 자주 비교하는가'라는 질문에 '항상 또는 가끔'이라고 답한 비율은 30대가 66%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64%로 그 뒤를 이었다. 다른 연령대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률이 높은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자신을 남과 비교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58%는 일상적으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고독에 빠질 확률이 더 큰 집단이라 할 수 있다.

20·30대 직장인은 가족, 친구보다 회사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기업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 판단했다. 모든 청년이 기업에 근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업이 청년 고독을 해결하는 하나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젊은이 중에는 직장 내에서 굳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느냐며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많다.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특히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를 덜 중요하게 여긴다. 술자리나 체육대회 같은 직장행사도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직장 내 연결은 더욱 느슨해지고 있다. 중장년층도 최근 '파워하라(power harassment·상사의 지위를 이용한 괴롭힘)' 등을 우려해 젊은 세대와의 교류를 꺼리고 있어 소통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가치관 차이도 단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력하면 부유해진다는 희망으로 일해 온 쇼와시대 출신 상사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불황 속에서 성장한 부하직원들은 서로 가치관을 공유하지 못한다.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관계 단절이 오히려 그들의 고립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21년 미국과 영국의 기업을 상대로 한 클라우드 기술 기업 차지파이의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풀타임 재택근무를 하는 18~34세 직장인 81%가 '출근할 때보다 더 고립감을 느낀다'고 답변했다. 청년들은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다', '관심을 받고 싶다',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직장 내 청년 고립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첫 번째는 예방적 측면이고, 두 번째는 기업의 생산성 때문이다. 외로움은 노동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서구를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실제로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 의료서비스 기업 시그나의 조사에 따르면 고립감을 느끼는 직원들은 그렇지 않은 직원들에 비해 스트레스 관련 결근율이 높고, 연간 5일 이상 결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주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추산하면 연간 1540억 달러(약 212조원)에 달한다. 노동자 개인의 측면에서도 전혀 좋지 않다.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결국 이는 주변의 부정적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직장 내 고립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직장 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멘토나 강사 제도를 도입하거나, 상담소를 설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기업도 많다.

그러나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소소한 대화다. 설문조사 결과 고립감을 느끼는 청년들은 제대로 된 상담이나 조언보다 가벼운 소통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학에는 '자이언스 효과'라는 이론이 있다. 같은 사람이나 사물을 접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좋은 인상을 갖기 쉽다는 것이다. 진지한 대화는 오히려 상대에 다가가기 어렵게 만든다. 오히려 소소한 대화를 반복하다 보면 직장에서도 서로 친근감을 느끼기 쉬워질 것이다.

업무 효율도 높아질 수 있다. 2018년 일본 광고회사 덴쓰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에서 잡담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보다 '한다'고 답한 집단의 활력도가 33% 정도 높게 나타났다. 화장품 기업 코세의 경우 코로나19로 심화된 직장 내 고립과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세컨드 홈’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5명 내외로 나이와 직종이 다른 직원을 배치해 하나의 ‘유사 가족’을 구성해주고, 월 1회 온라인으로 가벼운 주제 하나를 정해 자유롭게 대화하는 기회를 갖도록 했다. 대화 주제는 신입사원이 직접 고르도록 했다. 이 덕분에 신입사원들의 직장 내 소속감이 크게 강화됐으며, 연차가 높은 직원들도 “젊은 직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는데, 좋은 계기가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보고서 발표 이후 일본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많은 사람이 20·30대가 외롭다는 사실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와 관련해서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물론 아직 대부분의 기업은 시급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변화는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식품업체 베이스푸드는 회사 주방에서 직원들이 다 같이 점심을 만들고, 직접 준비한 식사를 나눠 먹는 식사 모임을 시작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20·30대의 고립 문제를 무겁게 다뤄야 할 필요성을 계속 주장할 것이다.

<i>'나의 외로움·사회적 고립 위험 정도를 확인하세요'</i>

https://www.asiae.co.kr/list/project/2024050314290051322A

'청년고립24시' 기사가 읽고 싶다면
<1>아시아경제가 만난 고립·은둔 청년들① 나는 28세 고립청년입니다…"1인분 역할 못하는 존재"② 취업이 만든 고립…온종일 한마디 안한채 보낸 하루③ 육아보다 힘든 게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그렇게 우울증이 왔다④ 3년간 햇반·라면 먹고 온종일 게임만…정서적 불안 심해지면 결국엔<2>2024 고립 인식조사① 10명 중 6명 "외롭다"…관계단절·박탈감 고통 호소② "회사서 홀로 선 느낌"…직장인 2명 중 1명 "고립감 심해져"<3>곁에서 바라본 고립·은둔 청년들① 코로나 학번’이 위험하다...올해 빗발친 상담전화② 고립의 끝에 남겨진 흔적들…"엄마·아빠 보고 싶다, 미안하다"<4>고립의 이유와 사회적 비용① 취업 안돼 친구도 없어…손에 쥔 건 스마트폰뿐② 경제 손실만 11조원 이상…방치하면 국가도 ‘흔들’<5>한국 정책 3無의 한계① 컨트롤타워 없고 지자체 조례만 213개 ‘중구난방’② 54만 고립·은둔 청년을 32명으로 해결?…예산·인력·연구 태부족③ 일본 따라하기의 씁쓸한 결말…한국형 정책 호소하는 청년들<6>세계는 고립 문제 어떻게 풀고 있나① "스마트폰이 청년 망가뜨리는데 왜 대책 없나"…英 경제학자의 일침② 은둔형 외톨이 많은 日…직장인 고립에 집중한 이유③ [단독]WHO, ‘고립 문제’ 대응 위한 글로벌 지수 만든다<보도, 그 이후> ①죄책감에 무너진 부모들…"살아있다는 게 감사하죠"

기획취재부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