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정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9일 "인공지능(AI)과 AI 반도체 분야에 2027년까지 9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AI 반도체 혁신 기업들의 성장을 돕는 1조4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반도체 경쟁은 '산업전쟁'이자 '국가 총력전'"이라며 "전시 상황에 맞먹는 수준의 총력 대응 체계를 갖추기 위해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유치를 위한 투자 인센티브부터 전면 재점검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일본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에 대규모 지원에 나선 가운데 우리나라도 국내 기업에 대한 과감한 지원책을 펼쳐 글로벌 경쟁에 나설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특히 '국가AI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하고, 622조원 규모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에 박차를 가해 2030년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지난 30년간 메모리 반도체로 세계를 제패했듯이 앞으로 30년은 인공지능(AI) 반도체로 새로운 반도체 신화를 써나갈 것"이라며 "AI 기술에서 G3(주요 3개국)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주요국의 투자 환경과 지원제도를 종합적으로 비교·분석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과감한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는 최근 TSMC 일부 가동 중단에 따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동향을 점검하고, 지난 1월 제3차 민생토론회에서 발표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추진 현황과 AI 반도체 이니셔티브 방향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윤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우리 수출의 19%를 차지하는 반도체 시장이 이제 살아나면서 산업 생산과 설비 투자를 비롯한 산업 전반에 활력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평가한 뒤 대만 지진으로 인한 TSMC 반도체 일부 라인 가동 중지의 영향이 아직까지 크지 않지만,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조금의 빈틈도 없이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경제수석실과 경제안보비서실 중심으로 국가정보원과 함께 대만 상황을 면밀하게 챙겨보고 있다"면서 "정부의 조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지체없이 즉각 대응해서 기업의 불편이 없도록 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이번 대만 지진으로 미국, 일본, 유럽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더욱 속도를 내게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이런 흐름에 뒤처지면 반도체 산업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가 도약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제3차 민생토론회에서 발표한 622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전력, 용수, 주택, 교통 등 인프라 구축 상황을 점검하고, 관계부처에 차질 없는 후속조치를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우선 용인 국가산단을 2026년까지 착공하고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필수적인 전기와 공업용수를 정부가 책임지고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환경영향평가, 토지 보상 등의 절차도 2배 이상 속도를 내서 절반 이상의 시간을 앞당겨 완료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10GW(기가와트) 이상의 전력수요에 대응해 작년 12월에 전력공급계획을 확정했다"면서 "기업의 투자 일정에 맞춰 전력 인프라를 차질 없이 구축하려면 법적인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팔당댐에서 용인까지 48km에 이르는 관로는 지난 2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 곧 설치 작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생활 인프라와 관련해 반도체 고속도로는 올해까지 민자 적격성 조사를 마치고, 지난주 개통한 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은 6월에 구성역을 추가로 개통하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최근 반도체 시장은 ‘AI 반도체’로 무게 중심이 급속히 옮겨가고 있다"면서 "AI는 산업뿐 아니라 사회를 바꾸는 기반 기술로, 파괴력이 어마어마한 게임 체인저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가 AI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언급한 윤 대통령은 "반도체 시장의 미래 지형에서 우리나라가 초기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전략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하드웨어 제조와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과 활용 역량을 모두 갖춘 나라는 많지 않다"며 "우리나라가 AI 기술에서 G3로 도약하고 메모리반도체를 넘어 미래 AI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AI 반도체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먼저 고대역폭 메모리(HBM)에 프로세싱 기능을 추가한 차세대 고대역 메모리(P-HBM)와 인공 신경망 프로세스(NPU), 뉴로모픽 기반의 한국형 AI 반도체에 대한 R&D 투자를 과감하게 확대할 것"이라며 "한국형 저전력 고성능 AI 반도체를 적용해서 슈퍼컴퓨팅 데이터센터인 K-클라우드를 진화시키고, 온디바이스 AI를 적용해 PC·스마트폰 접속 없이 사용 가능한 스탠드 어론(Stand Alone) 스마트 디바이스로 세계시장을 선도하겠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기존 생성형 AI의 한계를 극복하는 차세대 범용 AI 원천기술 개발과 AI 안전기술 개발을 통해 책임성 있고 설명 가능한 방향으로 AI 기술의 발전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민관 협력이 중요한 만큼 향후 '국가AI위원회'도 신설한다. 윤 대통령은 "AI전략최고위협의회가 지난 4일 출범했다"면서 "이 협의회를 앞으로 국가 AI위원회로 격상해 AI국가 전략을 제가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AI윤리규범에서도 글로벌 리더십을 계속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5월 AI 안전·혁신·포용을 논의하는 ‘AI 서울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AI 윤리 규범에서 대한민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공고히 해 나갈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AI반도체로 K반도체 신화의 제2막을 써나가고 이를 기반으로 AI G3가 되는 그날까지 모두 함께 멈춤 없이 달려주시길 당부드린다"며 "여러분과 함께 뛰며 온 힘을 다해 여러분을 뒷받침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토론에서 반도체 분야 주요 기업, 관계부처 장관 등 참석자들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반도체 클러스터, AI 반도체 등을 주제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이정배 삼성전자 DS부문 사장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가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대한민국이 반도체 중추 국가가 될 수 있도록 투자 인센티브와 같은 적극적인 지원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글로벌 AI-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한국기업뿐만 아니라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까지 포함해 더욱 투자를 많이 하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금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용인 국가산단 착공과 관련해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통상적으로 산업단지는 부지 선정부터 착공까지 7년 정도 걸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것을 절반인 3년 반으로 줄여서 2026년에는 부지 착공 공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도 환경영향평가 관련해 "대규모 국가산단의 환경영향평가가 1년 이상 소요되지만, 용인 국가산단은 6개월 이내로 조속히 완료하겠다"고 설명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일몰 예정이었던 국가전략기술 투자 세액공제를 연장해 세제지원을 계속하겠다"면서 반도체를 포함한 공급망 리스크에 대해서는 "5조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안정적이면서도 경쟁력 있는 공급망 구축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빅테크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차세대·도전형 AI R&D 등 핵심 원천기술 확보에 힘써달라"고 요청했다. 류수정 사피온코리아 대표는 "우리의 우수한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잘 활용하면 저전력 AI반도체 시장에서의 선도도 가능할 것"이라 평가했다.
토론이 끝난 후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대만 지진으로 인한 공급망 우려에 대해 "산업부가 중심이 돼 시장과 공급망에 대한 영향 분석을 철저히 하고 그 결과를 우리 반도체 기업들하고도 공유해 달라"고 주문했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에 관해서는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 국가 핵심 전략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데는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도그마에 묶이면 안 된다"면서 "오래 전에 만들어 지금의 산업과 경제 상황에 맞지 않는 규제를 적용한다면 이는 납을 달고 뛰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AI-반도체는 파운드리도 중요하나 팹리스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며 "대학이 들어서면 도서관부터 지어 공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듯이, 중소 팹리스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공용의 시스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개별 분야에 R&D를 투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AI는 안보와도 연관되는 핵심기술로 국제협력이 원활히 이뤄지기 쉽지 않은 분야"라고 평가하면서 "이 분야에서 국가 간 협력을 이끌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대통령에게 글로벌 협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일을 알려주면 직접 뛰어 외교활동으로 풀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윤 대통령은 "신설된 대통령 직속 국가AI위원회를 통해 국가 재정지원 분야, 배분 우선순위를 정하고 규제 등 장애 요소를 찾아야 한다"면서 "조직·직제를 만들어 빠른 시일 내에 위원회를 개최하자"고 관계부처에 주문했다.
이날 회의에는 민간에서 이정배 삼성전자 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 최수연 네이버(NAVER) 대표, 류수정 사피온코리아 대표 등이 참석했으며, 정부에서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한화진 환경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이관섭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박춘섭 경제수석, 박상욱 과학기술수석 등이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