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생산성 높일까'…경제학자들이 54만원 내기 건 사연

'AI 시대 노동생산성 높아지나' 놓고 토론 활발
"단시일 내엔 어렵다"는 Fed 의장 의구심
"생산성 향상 기대" 기업들, 방안 모색 분주

"(미국의) 민간 비농업 부문 생산성 증가율은 2020~2029년 연평균 1.8% 이상 증가할 겁니다." 2021년 미국의 두 경제학자가 내기를 시작했다. 10년 뒤 미국 노동생산성이 빠르게 오를 것인가를 판단하는 내기였다. 미 의회예산국(CBO)이 전망한 증가율은 내기에서 언급된 것보다 낮은 1.5%(2021~2025년 평균), 1.4%(2026~2031년) 수준이다. 에릭 브린욜프슨 스탠퍼드대 교수는 비영리 재단인 '어롱벳'에 인공지능(AI)의 활용으로 노동생산성이 연 평균 1.8% 이상 증가한다는데 상금 400달러(약 54만원)를 걸었다. 반면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브린욜프슨 교수의 예상이 틀렸다는데 베팅했다.

비영리 재단인 '어롱벳'에서 에릭 브린욜프슨 스탠퍼드대 교수와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의 미국 노동생산성 전망 관련 내기가 진행 중이다.(사진출처=어롱벳 홈페이지 화면 캡처)

승패는 미 노동통계국이 2029년 4분기 민간 비농업 부문 생산성 증가율을 발표한 즉시 결정된다. 이 내기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근거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역할이 얼마나 될까 하는 지점에 두 경제학자가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기를 건 브린욜프슨 교수는 "AI가 거의 모든 산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범용인공지능(AGI)이 생산성을 높일 것이며 공식 통계에 이러한 점이 수년에 걸쳐 반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도전자' 고든 교수는 "로봇과 AI가 1995년 이후 디지털 부흥에 버금가는 새로운 부흥을 가져올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지고는 "의구심이 드는 건 미국의 로봇 재고가 지난 10년간 두 배 증가했어도 제조업 생산성 증가율이 0.1%에 그쳤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두 경제학자의 내기가 진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성형 AI가 노동생산성을 높여주는가'라는 질문은 해답을 찾지 못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경제학자들은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지표에 나타나고 있는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면서 "다만 대기업들은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AI를 도입하는 것을 두고 논의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단시일 내 생산성 향상은 글쎄"…Fed 의장도 의구심

보도에 따르면 미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해 일각에선 AI가 당장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지를 판단하기에 이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만큼 생산성 지표에 수치로 반영이 될 정도로 확대, 보급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 1월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단기간에는 쉽지 않고 아마도 장기간에 걸쳐 가능할 듯하다"는 시각을 밝힌 바 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존 C.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도 지난 2월 아직 이를 판단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연은에서 최근 AI와 관련한 행사를 진행한 결과 참석자들 전원이 AI가 매우 중요하고 향후 강력한 생산성 향상을 이끌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AI가 실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 (판단하기에) 이르다"고 답했다.

투자은행 뱅가드의 조셉 데이비스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 하반기에 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AI가 미 경제를 바꿀 수 있다고 전망했다면서 이 기술이 약 80%의 직업군에서 근무시간 20%를 줄여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아직 이러한 부분을 지표에서 확인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신중론만 있는 건 아니다. 올해 초 미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에서는 여러 석학이 AI에 따른 생산성 향상에 주목했다. 타냐 바니아 컬럼비아대 교수는 "챗GPT로 인해 AI 활용 비용은 줄고 생산성이 개선되는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했다. 안드레아 아이스펠트 UCLA 교수도 "챗GPT는 기존 인력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어 AI를 통해 생산성을 확 늘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무에 어떻게든 활용…기업들은 생산성 높이기 '집중'

대기업에서는 AI를 활용해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고 보고 활용 방안을 모색 중이다. 미 최대 소매업체인 월마트는 지난해 생성형 AI가 고객의 질문에 응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미국 사업장에 도입했다. 도나 모리스 월마트 최고인사책임자(CHO)는 당시 이를 통해 직원들의 일상 업무를 줄이겠다고 밝히면서 이러한 과정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대표 백화점인 메이시는 생성형 AI로 이메일 초안을 작성하거나 온라인 제품 설명을 보완하는 등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의류업체인 아베크롬비앤피치의 디자이너들도 옷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브레인스토밍할 때 AI 그래픽 프로그램인 미드저니를 사용한다고 한다. 사미르 드사이 아베크롬비앤피치 최고디지털책임자(CDO)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원을 절약했는지 평가하기 쉽지 않다면서 "특정 팀이 이전 몇 년간에 비해 얼마나 많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면 이를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글로벌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는 냉동고 8000대에 생성형 AI를 설치해 재고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AI가 설치된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재고 상황을 파악해 알림이 울리도록 했다. 벤앤제리스의 모회사 유니레버 측은 "이 기술로 곧 품절될 상품을 식별하고 이를 보충할 트럭의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파악한다"고 설명했다.

기획취재부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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