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선희기자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374호 소법정. 김정중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오랜만에 법복을 입고 법정에 들어섰다. 사법부의 고질적 문제로 꼽혔던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올해부터 '법원장 재판부'가 도입된 데 따른 것이다. 김 법원장은 앞으로 민사단독62부를 맡아 재정단독 장기미제 사건을 주로 다룰 예정이다.
첫 심리 시작에 앞서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다수의 취재진 앞에 선 김 법원장은 "이 재판부는 전담사건 특성상 평소 소송 당사자 외에 방청객이 없는 편이어서 소법정을 배정받아 사용하고 있는데, 오늘 많은 분이 오셨다"며 "법원장 재판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재판 장기화에 대한 불만과 비판 여론이 고조된 상황에서, 신속한 재판을 위한 법원의 노력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김 법원장은 "이 노력이 제대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법관 증원과 법관 임용 자격 개선을 위한 입법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현행법대로라면 내년부터 3년 동안 법관이 차츰 감소해 다시 사건 적체의 늪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여건에서도 법원의 역할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무겁게 받아들여 충실하고도 신속한 재판을 받을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법원장이 첫 진행한 심리는 교통사고 피해자와 한 보험사가 7년째 이어온 손해배상청구 소송 사건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11년 발생한 교통사고와 관련해 보상금 규모를 놓고 다투다 피해자가 2017년 3월 보험사를 상대로 약 5억3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단독 재판부를 맡은 김 법원장은 배석판사나 재판연구원 없이 그간의 재판 진행 경과와 기록을 직접 살피며 차분하게 심리를 진행했다. 단독 재판부는 재판 진행과 판결 작성 등 재판의 전 과정에 걸친 업무를 판사가 직접 맡는다.
앞서 지난 25일에는 황정수 서울남부지법원장도 첫 법원장 재판을 진행했다. 민사1부 재판장을 맡은 황 법원장은 민사항소 장기미제 사건을 주로 맡게 된다.
황 법원장은 이날 하루에만 10개의 항소심 심리를 진행하면서 직접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택시기사로 근무했던 백발의 노인이 임금인상분을 받지 못했다며 2021년 회사를 상대로 약 48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추가 임금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근거로 항소한 사건이다.
해당 노인은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면서 (회사가) 각서를 받았는데, 저걸 안 쓰면 (자동차) 키를 안 줬다"면서 "운전기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인데, 안 쓰면 키를 안 주겠다는데 어떡하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정을 들은 황 법원장은 "피고(택시회사)의 강압에 의해 (각서를) 썼다면 효력이 문제 될 수도 있다"면서도 "만약 유효하다 하더라도 (각서에 명시된 기간 이외의) 근무에 해당되는 금액이 120만원인데, (택시회사 측에서) 지급할 생각이 없나"라고 제안했다. 원고와 피고 양측이 모두 이에 대해 합의 의사를 보이자 3년째 이어온 소송이 마침내 변론을 종결할 수 있게 됐다.
남부지법 관계자는 "법원장의 장기미제사건 재판은 사건이 장기미제가 되는 원인을 법원장이 직접 파악하고 그 해소에 필요한 방안을 찾아볼 기회가 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이를 통해 법원장은 단기적으로 일선 판사들의 신속한 재판에 필요한 행정적 지원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장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제도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일선 판사들에게도 신속한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를 환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