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확인된 순간부터 단축 근무 실시' 출산율 급증한 '이 기업'[K인구전략]

(45)'닥터지' 만드는 고운세상코스메틱
자율성 부여 통해 책임감, 실적 상승
제도 매년 업그레이드…효용감 높아져

편집자주대한민국 인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기업에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일로 평가하는 기업 내 분위기와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곧 K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만, 적어도 일터에서의 부담감이 걸림돌이 돼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경제는 가족친화 정책을 선도하는 기업을 찾아가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지점을 짚고,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기업과는 다각도에서 함께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업부터 변하도록 독려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분석한다. 금전적 지원보다 심리적 부채감을 줄여주는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가 핵심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측면에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출산을 앞둔 김선호 고운세상코스메틱 인재성장팀 팀장(왼쪽)과 최근 육아휴직을 다녀온 오용화 상품기획팀(BM1팀) 매니저가 사내 가족친화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2.70명. 코스메틱 브랜드 '닥터지'를 만드는 중소기업 고운세상코스메틱이 통계청 기준을 인용해 자체 집계한 2022년도 합계출산율이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로, 고운세상코스메틱 합계출산율은 같은 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0.78명의 3배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출산율 1위인 이스라엘(2021년 합계출산율 3.0명)에 가까운 수치다. 2019년만 해도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출산율이 0.43명에 불과했지만 그 이전부터 10여년간 자체적으로 마련한 다양한 가족친화제도 덕분에 출산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시작은 유연근무제였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은 2017년 자율 출퇴근제를 처음 시행했다. 2003년 닥터지 브랜드를 론칭한 고운세상코스메틱은 당시 병원 내에서만 제품을 판매하다 상업 시장에 뛰어들면서 확장세로 나아가던 시기였다. 유연근무는 일에만 더 몰입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해주겠다는 취지에서 도입했다. 직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면 이와 함께 업무 관리 능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김선호 인재성장팀 팀장은 “직원이 하루 동안 약속했던 목표만 달성하면 나머지는 회사에서 관리하는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이 (회사 내) 존재한다”면서 “목표 달성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기업에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은 2020년 무렵부터 출산과 육아에 관련된 제도 도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현재 법적으로는 임신 기간 12주 이내, 36주 이후부터만 단축 근로가 가능하지만, 임신이 확인된 순간부터 출산 전까지 2시간 단축 근로를 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실시했다. 육아휴직 기간도 법정 1년보다 긴 최대 2년으로 확대했다. 김 팀장은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친화제도는 조직 구성원의 생애주기와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고운세상코스메틱은 청년 근로자 비율도 높았고 여성이 많은 회사였다. 2021년 기준 고운세상코스메틱 전체 근로자 평균 연령은 34.5세, 청년근로자 비율(만 35세 미만) 또한 65%였다. 근로자 및 여성 임원 비율이 79%에 달했다.

보다 강화된 가족친화제도들이 생겨나자 실제로 직원의 임신과 출산이 이어졌다. 1년에 5명 정도였던 출산자 수는 2022년 10명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도 고운세상코스메틱의 합계출산율은 1.34명에 달했다.

1년3개월간 육아휴직 후 지난해 복직한 상품기획팀 오용화씨(35·여)는 “워킹맘이 되면 어려운 상황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내 다른 직원들이 업무를 잘해내는 것을 보면서 이런 제도 안에서는 나도 아기를 키워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돌아온 뒤에도 업무 범위가 줄어들거나 입지가 축소되는 그런 일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씨는 복직과 함께 사내 ‘워킹맘을 응원해’ 프로그램을 통해 바뀐 제도나 시스템 등을 안내받아 적응이 한결 쉬웠다고 전했다.

오씨는 오전 9시 23개월 된 딸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9시55분에 출근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코어 시간만 준수하면 개인 상황에 맞춰 일별 근무 시간이 조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은 하루 7.5시간 기준으로 근로 시간을 월 단위로 관리한다. 조금 늦은 날은 그만큼 더 일하면 된다. 만약 재택근무를 하다가 야근을 하게 돼도 회사는 이를 초과근무로 인정해 보상 휴가를 부여한다.

출산 격려금 지급…매년 업그레이드되는 제도

합계출산율이 2명이 넘었던 2022년에는 직원들의 출산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한 팀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출산휴가를 쓰게 됐다. 이에 대체근무자를 채용하기도 했지만 남아 있는 직원들을 위해 ‘서포터즈 지원금’ 1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하기로 했다. 출산휴가에 들어가는 직원들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공백 걱정을 덜고 축하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김 팀장은 “출산 당사자한테만 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팀원들에게도 작지만 보상을 줘 진심으로 축하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지난해엔 돌봄 재택제도와 중증질환 휴직 제도를 신설했다. 돌봄 재택제도는 구성원 가족의 질병, 사고, 노령 등으로 돌봄이 필요할 경우 주 5일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연간 최대 10일 휴가와 90일간 휴직도 가능하다. 재직 동안 중증질환이 발병한 경우에는 최대 1억원 한도의 치료비 지원과 최대 1년간 유급 휴직을 지원한다. 휴직 기간 내 기본급의 100%를 지급한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의 가족친화제도는 여전히 진보하고 있다. 인사팀 역할을 하는 인재성장팀은 직원들의 건의 사항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매년 새로운 제도로 만들어낸다. 올해는 본인 및 배우자 난임치료비를 지원하고, 본인 난임 치료 시술 당일 횟수 제한 없는 유급휴가를 신설했다. 남성 직원을 위한 배우자 임신기간 단축 근무 지원(임신 36주부터 월 2시간씩)과 태아검진 동행 휴가 반차를 지원하기로 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 입학식 당일 쓸 수 있는 하루짜리 휴가도 제공한다.

가족친화제도로 공고해진 직원 만족감과 안정적 업무 환경은 기업의 매출 성장세도 이끌어냈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의 2022년 매출액은 1971억원으로 2017년 264억원에서 7배 이상 증가했다.

이주호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는 기업이 가족친화제도를 갖추는 일은 직원들의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회사는 구성원들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사회적 기관이 돼야 한다”면서 “이는 좋은 제품 개발의 밑바탕이 되고, 이를 통해 고객도 주주도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 회사 안엔 사람이 있다. 회사는 제도를 통해 개인이 성장할 기회를 만드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유리·이현주·정현진·부애리·공병선·박준이·송승섭 기자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정치부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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