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건의…野 '정쟁 말고 수용하라'

與, 의총 열고 尹 거부권 행사 건의 결정
野 이어 제3지대도 반발…"방탄 거부권"
대통령실, 법안 이송 뒤 부처 의견 수렴

국민의힘이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태원특별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하면서, 야권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법안 통과를 이끈 더불어민주당을 필두로 제3지대에서도 '방탄 거부권'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임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8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은 국민 159명의 생명보다 총선 공천권이 더 소중한가"라며 "대통령실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허수아비 여당의 모습이 한심하고, 한동훈 비대위 체제에도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밝혔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가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태원참사특별법 공포 촉구 비상행동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임 원내대변인은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을 '총선용 정쟁'이라고 말하는 국민의힘은 부끄러운 줄 알라"며 "(여당이) 특조위 구성 등 불공정성을 운운하는데 특검 삭제, 특조위 활동 및 구성 등 이미 충분히 여당의 의견을 반영해 양보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거부권 행사 건의로 뜻을 모았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야당은) 이제껏 특별한 조사가 필요한 기구를 설치하는 특별법을 처리하는 데 있어 여야가 합의 처리해온 관행을 철저히 무시했다"며 "의원들의 총의를 모아 이태원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정했다"고 밝혔다.

여당이 이태원특별법에서 문제로 삼는 지점은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에 관한 내용이다. 특조위 구성에 대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고, 특히 특조위가 불송치나 수사 중지된 기록까지 열람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은 '세월호 참사' 등 재난 관련 특조위에서 유사한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윤 원내대표는 "재탕, 삼탕, 기획조사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1천만 노인 시대, 어르신 정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민주당뿐 아니라 법안 통과에 조력한 정의당도 반발하고 나섰다. 강은미 원내대변인은 여당의 거부권 행사 건의 방침이 나온 직후 "마지막까지 그렇게 유족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아야 직성이 풀리겠느냐"며 "각고의 노력을 다해 겨우 제정한 법을 마지막까지 발목 잡는 행태가 후안무치"라고 비판했다. 김희서 수석대변인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대형 참사를 정쟁화하는 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라며 "유가족을 외면하고 국회 표결에도 불참한 여당이 끝까지 사람의 도리를 외면한다"고 꼬집었다.

제3지대에서도 이태원특별법을 즉각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설주완 미래대연합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여당의 건의를 받아들인다면 올해 2번의 거부권 행사 모두 '방탄 거부권'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헌법상 권리를 방탄으로 사유화하는 데 대해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로 '가족 방탄'을 한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키기 위한 '측근 방탄' 거부권인가"라며 "진상 규명과 피해자 회복·지원을 위해 특별법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윤석열대통령이 31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국민의힘은 특조위 구성 등 독소조항으로 여기고 있는 내용을 제거한 뒤 재협상하자고 민주당에 제안했다. 그러나 이미 윤 대통령이 이른바 '쌍특검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한 터라, 민주당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도 이날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거부권 행사 건의'에 반발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19일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관련 부처 의견을 취합한 뒤 판단을 내리겠다는 방침이다. 법무부 등 관련 부처에선 아직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이태원특별법이 여야 합의 없이 야당에 의해 일방적으로 처리됐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면서도 진상 규명보다는 총선을 앞두고 정쟁만 불러올 우려가 크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부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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