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훈기자
은행권에서 4%대 정기예금 상품이 자취를 감추면서 시장의 부동자금이 늘고 있다. 주요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불리는 수시입출금식예금(일명 파킹통장) 등 요구불예금이나 증시 투자자예탁금은 완연한 증가세를 나타내는 모양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616조748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말(598조7041억원) 대비 18조439억원(3.01%)이나 늘어난 수치다.
요구불예금은 은행권의 보통예금이나 파킹통장 등 금리 수준은 정기예금에 비해 낮지만, 예금주가 원할 때 언제나 입·출금이 가능한 자금을 일컫는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만큼 시중은행의 금리가 오르면 정기예금으로, 내리면 증권·부동산 등 투자자산 시장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런 요구불예금의 증가 배경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꼽힌다. Fed가 지난해 11월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통해 올 연내 여러 차례에 걸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해서다. Fed의 태도 변화에 시장의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시장금리 역시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의 준거 금리로 활용되는 은행채 1년물 금리는 지난해 11월 초 4.151%에서 전날 3.706%까지 45bp(1bp=0.01%) 가까이 내렸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등의 예금금리도 4%대를 밑돌고 있다. 이날 기준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3.70~3.75% 수준으로 모두 4%를 밑돌았다. 저축은행의 이날 기준 평균 금리도 3.96%로 4%선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영향으로 지난달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849조2957억원으로 전월 대비 19조4412억원(2.24%)이나 감소했다.
부동자금은 증시로도 이동할 조짐을 보인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그간 투자시장의 핵심이던 부동산시장의 경우 최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확산하고, 집값 하락 전망이 하락 또는 유지 전망보다 많아지고 있는 까닭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초 44조6000억원 수준까지 주저앉았던 투자자예탁금은 12월 27일엔 56조4600억원으로 10조원 넘게 불어나기도 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2368.34에서 2613.50으로 약 10.4% 상승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정기예금의 감소는 수신금리 하락과 더불어 연말 재무제표 관리를 위해 일부 기업들이 대출 상환에 나선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