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화기자
지난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네덜란드에서 들고 온 반도체 사업 성과에 주목하는 사이 반도체 업계 근심을 더하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삼성전자 부장 출신인 김모씨를 포함한 일당이 중국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 18나노미터(㎚·1㎚=10억분의 1m)급 D램 공정 기술 등을 넘긴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업계는 이번 기술 유출로 삼성전자가 2조3000억원가량의 피해를 보았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지난 3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2조4300억원)에 맞먹는 피해가 발생했다고 본 겁니다. 어려운 경제 상황 가운데 12만명 넘는 삼성전자 직원들이 노력해 얻은 3분기 성과가 소수의 일탈로 날아가 버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번 유출이 일시적인 피해로만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와 중국 간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D램과 낸드플래시로 나뉘는데요, D램 기술 수준이 낸드보다 높다 보니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5년 이상 벌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중국 기업이 자국 정부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해 격차가 줄고 있던 상황입니다.
실제 중국 D램 기업인 CXMT는 2016년 설립됐지만 짧은 시간에 여러 사업 성과를 냈습니다. 지난달에는 모바일용 D램 제품인 저전력더블데이터레이트(LPDDR)5 D램을 선보이기도 했죠. 삼성전자가 같은 규격의 LPDDR5 D램을 선보인 때가 2019년인 것과 비교해보면 기술 격차가 4년 이하로 줄어든 겁니다.
향후 추가적인 인력 및 기술 유출을 우려하게 하는 요소들도 남아 있습니다. 검찰이 밝힌 김씨의 행적을 보면, 김씨는 경력 10년이 넘는 삼성전자 직원 등을 포함한 20여명의 국내 기술직 동료에게 이직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본인은 10억원 넘는 연봉에 수백억원 규모의 금품을 받았다고 하죠. 중국이 국내 반도체 전문가를 빼간다는 소식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들이 제시하는 금액을 확인하니 새삼 심각한 문제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반도체 업계는 중국의 이같은 행보가 향후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중국이 미국과 반도체 분야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는 데다 최근 미국 제재 강도가 세지면서 반도체 기술 자립에 대한 중국 열망이 한층 커진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지난 9월 보고서를 통해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은 끝나지 않을 전쟁"이라고 평가한 것 역시 이같은 상황 판단에 근거했을 겁니다.
업계 안팎에선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인 만큼 피해를 막을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해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데요, 경쟁국과 비교해 양형 수준이 낮다 보니 이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반도체가 국가 안보·경제 자산으로 중요도가 커진 만큼 관련 법 역시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실제 삼성전자 전무 출신으로 중국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복제하려다 지난 6월 붙잡힌 최모씨가 지난달 보증금 5000만원을 내고 보석으로 풀려나 한 차례 논란이 된 적 있습니다. 최씨가 기술 유출로 조 단위 피해를 냈을 뿐 아니라 국내 엔지니어들을 중국으로 빼낸 혐의도 받는 상황에서 보석으로 풀려났다 보니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비판이 이어졌죠.
이같은 논란이 있은 지 불과 한 달 만에 또다시 유사한 반도체 기술 유출 범죄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새해엔 관련 문제를 개선할 해법이 빠르게 마련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