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500원 육박에 국민연금 환헤지 물량 곧 시장 나올듯
정부 관리 의지에 환율 변동성 줄어
트럼프 관세우려로 달러 초강세, 변동성 확대 우려는 여전
지난 연말 1486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다소 진정됐다. 71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환헤지(위험분산) 물량이 시장에 풀린다는 소식에 원화가치 하락세가 다소 누그러진 까닭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 우려에 세계적으로 달러 초강세가 이어지고 있어서 환율 안정을 전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연금 환헤지 소식에 치솟던 환율 다소 안정세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2.9원 오른 1469.5원에 개장한 뒤 오전 9시45분 현재 1465.2원에 거래 중이다. 새해 첫 거래일이었던 전일 원·달러 환율은 주간거래 기준 전 거래일 대비 5.9원 내린 1466.6원에 마감하면서 약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7일 장중 1486.7원까지 치솟으면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극심한 정치 혼란이 국내외 투자자들의 원화매도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강세를 나타냈던 환율은 국민연금의 환헤지 물량이 외환시장에 풀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일 하락 반전에 성공했다.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한다는 것은 일정 기준보다 원·달러 환율 수준이 높으면 보유한 해외자산의 일부를 선물환 매도한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위해 달러 선물환을 매도하면 이를 사들인 은행이 달러 현물환을 팔아 시장에 달러가 공급되고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효과를 내는 구조다. 만약 국민연금이 해외자산의 일부를 현재 환율인 1460원대에 미리 팔아 놓고 나중에 환율이 1300원으로 떨어지면 차익까지 거둘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달 해외투자 환헤지 비율을 최대 10% 상향하는 기간을 올해까지로 연장한 바 있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자산 규모는 약 4855억달러로 이 중 10%는 485억달러이며 원화로 환산하면 약 71조원에 달한다.
윤경수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국민연금 내부 결정에 따라 곧 국민연금에서 환헤지 물량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부분이 환율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환당국 주요 책임자 중 한명인 한은 국제국장이 구두개입성 발언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외환시장 변동성 관리에 나선 것이다. 이수형 한은 금융통화위원도 전일 미국의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외환시장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될 경우 그에 대응할 정책 수단을 갖고 있다"며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환율도 진정될 것"이라며 시장관리 의지를 강조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이 어제 국민연금의 전술적 환헤지 출현을 예고하면서 해당 물량에 대한 경계수위가 시장에서 빠르게 고조됐다"며 "1470원대 중반에서 대기하고 있는 국내 수출업체 매도물량도 환율 상승을 억제하는 재료"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2기 관세정책 우려에 변동성 다시 커질 우려도
외환당국과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시장 변동성 억제에 나섰지만 환율이 다시 튀어 오를 가능성도 여전하다.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인한 달러의 초강세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DXY)는 현재 109.39에 달하며 2022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멕시코와 중국, 캐나다 등 주요 무역 교역국에 대규모 관세를 예고한 것이 달러 강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한은 외자운용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트럼프 정부의 관세, 이민, 감세 등 주요 정책 시행에 따른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며 "다른 국가 대비 상대적으로 견조한 미국 경제상황과 중국과 유럽 등의 경기부진이 겹치는 것도 달러 강세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출부진 우려도 원화약세 요인이다. 정부는 전일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1.8%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인 2%를 밑도는 저성장이다. 한은(1.9%)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2.0%)의 전망치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반도체 등 수출 주력업종의 경쟁 심화, 미국 통상정책 변화 등으로 저성장 고착화를 우려했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수출이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등 악재가 겹쳐 있다"며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구조에서 수출 둔화가 성장 둔화로 이어져 원화 가치가 약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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