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환기자
"(정부에서는) 낙수효과가 기대된다고 하는데, 필수의료과 의료진들은 ‘우리는 낙수과가 됐다’는 자조 섞인 말을 합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지난 23일 의과대학 정원 조정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한 의료계 인사가 한 말이다. 그는 필수의료 공백 사태와 의대 정원 사이의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증원에 반대했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의 논리 중 하나로 낙수(落水)효과를 제시했다. 정원을 확대해 ‘윗물’인 전체 의사 수가 늘면, ‘아랫물’인 필수·지역의료에도 의사가 증가한다는 의미다. 의료계는 정부의 낙수효과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의대 정원과 필수의료 인력의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연구는 없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는 어쩌다 ‘낙수과’라는 오명을 썼나. 필수의료과의 고질적인 문제는 과도한 업무강도와 저수가에 따른 수익성 저하, 의료행위에 따른 소송 위험에 노출되는 ‘사법리스크’ 등이 꼽힌다. 이 때문에 필수·지역의료로 향해야 할 전공의들이 발걸음을 돌렸다. 또 다른 의료계 인사는 "생명을 지키겠다는 일념만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환자를 돌보는 필수·지역의료 의료진이 졸지에 낙수효과를 기다려야만 하는 ‘낙수 의사’가 돼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주객이 전도됐다는 말이다.
의대증원을 포함한 의료인력 문제는 의사와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정책 결정자인 정부와 의료계, 의료 수요자인 국민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합리적인 대책을 도출해야 한다. 지금의 의대증원 논의는 필수·지역의료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근거가 부족한 가운데, 증원을 찬성하는 여론을 바탕으로 정부가 드라이브를 거는 모양새다. 의료계가 현재의 의대증원 추진에 강경하게 반대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정부가 필수·지역의료의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증원 카드를 꺼낸 것이라면, 의료계가 문제 삼는 필수·지역의료의 낮은 수가나 처우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동시에 내놔야 한다. 의료계는 필수·지역의료 공백 사태는 고질적인 저수가와 이에 따른 저수익, 불안정한 진료 여건 등이 원인이라고 주장해왔다. 필수·지역의료의 저수가나 수익성 문제의 대책 역시 의대증원 못지않게 협상 테이블에서 다뤄야 할 중요한 주제다. 국민 여론을 등에 업었다고 해도 ‘낙수’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밀어붙인다면 의료계와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오히려 의료계의 파업을 부추기는 역효과만 가져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