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진기자
"건전 재정정책 당연히 필요하죠. 그런데 전후 맥락을 따져야 합니다. 지금처럼 경기가 하강 국면일 때는 재정승수가 큽니다. 확장 재정을 통해 경제 회복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지난 15일 중앙대 연구실에서 만난 류덕현 경제학부 교수는 현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가 경기 위축을 심화하는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처럼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을 때는 재정 승수가 크다"며 "지나친 재정건전화를 고집하다 보면 고꾸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매년 '한국경제 대전망' 시리즈를 발간하는 사단법인 '경제추격연구소'의 부소장이기도 하다. 연구소가 올해 내놓은 '2024 한국경제 대전망'에서는 내년 우리나라 경제 핵심 키워드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음)'으로 잡았는데, 류 교수는 이에 대해 "모든 게 얼어붙었던 팬데믹이 끝나고 봄이 왔지만, 경기는 여전히 냉랭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금리와 물가의 안정, 중국 경제와 반도체 산업의 회복 등을 기대했으나 지금도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온기를 느낄 수 있게 군불을 때는 역할을 정부가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류 교수와의 일문일답.
-세수 결손과 긴축기조가 이어지는 현시점에서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일각에서는 세계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처럼 대외 개방도가 높은 나라가 확장재정을 펼쳐도 효과가 미미할 거라 오히려 아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2분기 정부부문의 성장 기여도가 마이너스였다. 민간 부문과 비교해 정부 소비와 투자가 적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경제가 1%대 성장을 하는데 부정적 기여를 한 셈이다. 게다가 재작년과 작년에는 초과 세수가 있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가 나빠지면서 올해는 오히려 세수 결손이 생겼고, 지출도 어려워졌다. 작년 예산에서 계획했던 지출을 다 못하고 있지 않나. 그럼 악순환을 그리게 된다. 예산을 계획했던 것만큼은 써야 한다. 현 정부에서 불용이 나는 부분을 당연시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재정건전화가 필요한 건 맞지만, 그것도 상황을 봐가면서 강조해야 한다. 경기가 완전하게 회복되기 전에 지나친 재정건전화를 추구하다 보면 부작용이 생긴다. 예를 들어 지난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에 남부 유럽에 한 번 더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이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펼쳤는데, 이후에 경제 회복이 아직 덜 됐던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이 너무 서둘러 긴축재정을 하는 바람에 타격을 받았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재정 건전화가 시급할 정도는 아니다. 코로나19와 고령화 대응 같은 복지지출 때문에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가 많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이는 우리가 조세부담률을 늘릴 만한 정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리해보면 국가부채가 늘어난 규모 중 절반은 코로나19 대응, 25%는 고령화 대응, 나머지 25%는 지난 정부의 진보적인 정책 특징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고금리 환경이 경제를 더 어렵게 하는 것 같다. 한미 정책금리차가 역대 최대인 상황에서 내년에 한국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지.
▲그러기는 힘들어 보인다. 외환시장이나 자본시장 움직임을 봐야 하므로 우리가 먼저 키를 움직이기는 어렵다. 원래 올해 초에는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 하반기쯤 될 거라는 예측이 많았는데, 이게 6개월 정도 이연된 것 같다. 내년 6월까지는 상황을 보고 그 이후에 금리 인하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해야겠다. 지금 FOMC 분위기나 제롬 파월 의장이 언급하는 걸 봐도 그렇다. 최근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의 대담을 봐도 인플레 안정화를 먼 이야기로 인식하더라. 그래서 우리도 내년 여름까지는 금리 인하를 언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올해 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내년 2분기쯤 정책금리를 내릴 거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미국은 정말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를 내고 있다. 전 세계 GDP의 약 25%를 차지하는 나라가 4% 성장을 하는 거다. 그래서 금리 인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거다. 높은 금리 수준을 내년까지 끌고 가는 건 여전히 노동시장이나 물가가 불안해서다.
-재정을 많이 풀어서인가.
▲오로지 확장재정만으로 이 성장세가 유지되는 건 아닌 것 같고,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추격연구소에서 개발한 경제추격지수에 따르면 작년에는 중국이 7~8년 뒤에는 미국과의 격차를 좁힐 거라고 봤는데, 올해는 이 속도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첨단 산업 같은 부문에서 중국을 압박하고 경쟁했던 결과가 슬슬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중국의 리오프닝 회복 속도가 뒤처지는 면도 있어서 격차가 벌어지는 것 같다. 이외에도 산업 혁신과 테크 기업의 선도도 한몫했다.
-탄소중립이나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가 이에 발맞출 수 있다고 보는지.
▲유럽의 경우 환경과 탄소중립에 대한 기술적 기준을 표준으로 만들어 외부에 강하게 요구하는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제는 '안 해도 그만'의 수준이 아니다. 우리가 재생에너지로 된 에너지원을 쓰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유럽 국가에 더이상 수출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른다. 이런 부분은 우리가 기술혁신의 계기로 삼아 맞춰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이 분야에 투자해서 국제 표준을 따라가야 한다.
-최근 가계부채 완화를 위해 거시건전성정책과 통화정책의 공조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금융당국에서 신생아 특례 대출 등을 내놨다. 엇박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엇박자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생아 특례대출의 대상은 한정적이다. 전세대출 확대 같은 제도보다는 시장을 폭발적으로 움직일 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부채 자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초점은 부동산시장 완화에 맞춰야 한다. 우리나라 외에 또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곳이 호주인데, 그 이유가 주택 정책이 약해서다. 주거복지와 주택공급이 원활해야 가계부채도 줄어들 수 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고령화 등으로 1%대로 떨어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저성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면 곤란하다. 물론 과거의 고속 성장을 그대로 이어가는 건 무리다. 대부분의 선진국도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낮은 성장률을 유지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3% 잠재성장률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막혀있던 산업 생태계의 혈을 뚫어주거나 기술혁신, AI(인공지능) 생태계 고도화 등을 통해서 총요소생산성을 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