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날엔]정동영-노회찬이 같은 교섭단체에 있었다?

민주평화당-정의당, 공동 교섭단체 합의
총선 2년 후…합당 아닌 ‘정치 연합’ 묘수
노회찬 비보, 4개월 만에 교섭단체 지위 잃어

편집자주‘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한국 정치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던 ‘평화와 정의를 위한 의원 모임’이라는 존재를 기억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먼 옛날도 아니고 불과 5년 전, 한국 정치의 한 축을 장식했던 그 이름. 그들은 의원 친목 모임이 아니다. 국회 교섭단체의 하나다.

현재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처럼 원내 20석 이상의 의석을 지닌, 법적인 권한을 보장받는 국회 교섭단체. 흥미로운 점은 평화와 의원 모임이 정치인 정동영과 정치인 노회찬 등이 손을 잡았던 연대 결사체였다는 점이다.

정치인 정동영은 전북 전주를 중심으로 호남에서 정치 기반을 닦아온 인물이다. 정치인 노회찬은 정치인 심상정과 더불어 진보정치를 상징해온 인물이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같은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장면.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2018년 3월20일 국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양당은 원내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윤동주 기자 doso7@

2018년 4월2일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지도부는 평화와 정의 의원 모임 첫 상견례를 갖고 손을 맞잡았다. 그들이 함께한 모습은 역사에 기록될만한 장면이다. 정치인 정동영과 노회찬 그리고 심상정과 이정미, 조배숙과 김경진 그리고 김종대 등 다양한 정치 스펙트럼을 지닌 이들이 단일 대오로 뭉쳤다.

그들은 훗날 각자의 길을 갔다. 정치인 조배숙은 국민의힘 후보로 지난해 전북도지사 선거에 나선 인물이다. 정치인 김경진은 윤석열 대선캠프에 참여해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인물이다. 정치인 심상정과 이정미 등은 지금도 정의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들이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정치 상황과 관련이 깊다. 2018년 4월이면 2016년 제20대 총선을 치른 지 2년이 되는 시점이다. 민주평화당을 찍었던 유권자의 성향과 정의당을 찍었던 유권자의 성향은 분명히 다르다.

그런 두 개의 정당이 총선이 2년 지난 이후 손을 잡는다는 것은 정치적 부담을 짊어지는 행동이다. 공동 교섭단체의 명분을 위해 한반도 평화 실현,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노동존중 사회 등 8대 정책공조 과제를 제시하기는 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 2019년 3월28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 있는 여영국 후보 사무실을 찾아 여 후보와 손을 잡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하지만 정책을 위한 연대라기보다는 정치를 위한 연대, 더 엄밀히 말하면 정치적인 활용을 위한 연대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교집합이 더 크고 넓었다면 합당이라는 과정을 거쳤을 텐데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당을 유지한 채 공동 교섭단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민주평화당 14석과 정의당 6석 등의 연대를 통해 국회 교섭단체의 하한선인 20석을 맞추는 데 성공했지만, 출발부터 살얼음판의 연속이었다. 20석의 토대가 무너지면 교섭단체를 유지할 수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

평화와 정의 의원 모임 소속 의원은 탈당도 안 되고, 다른 선거를 위해 의원직을 던지는 선택도 할 수 없다. 20석을 유지한 상태로 무소속 의원 등을 추가로 영입해야 살얼음판 교섭단체 구성에 숨통이 트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노선에 차이가 있는 두 개의 정당이 공동 교섭단체를 만들어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국회 교섭단체가 되면 여야 논의에서 발언권이 수직으로 상승한다.

국회에 배정되는 공간도 넓어지며, 상임위원장 배정도 기대할 수 있다. 상임위원회 의원 배분에서도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정치적인 실익이 쏠쏠하다는 얘기다.

2018년 4월19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개헌 토론회에서 국회 4개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토론하기 직전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노회찬 원내대표 / 국회사진기자단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언제든지 공동 교섭단체를 탈퇴할 수 있다고 전제했지만, 1개월 전에는 상대 당에 통보해야 한다는 제한 규정을 뒀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제20대 국회 후반기를 함께 하자는 얘기였다.

평화와 정의 의원 모임 탄생으로 국회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까지 4개 교섭단체가 동거하는 체제가 됐다. 교섭단체가 4개나 존재하는 것은 1980년대 삼김시대 이후 정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장면이다.

정치의 역동성이 강화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야 합의는 그만큼 어려워질 수 있다. 다양한 정당의 이해 요구를 집약해 해법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첫 마음을 변치 말자던 '무언의 약속',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의 그 다짐은 지켜졌을까.

평화와 정의 의원 모임 초대 대표를 맡았던 노회찬 의원의 갑작스러운 비보와 함께 공동 교섭단체 정치 실험은 중단됐다. 노회찬 당시 정의당 원내대표는 2018년 7월23일 세상을 떠났다. 그 충격파는 정의당을 넘어 여의도 정가로 번졌다. 국회 논의의 기본 골격이 달라졌다.

평화와 정의 의원 모임은 교섭단체 정족수 하한선인 20명이 무너졌고, 결국 공동 교섭단체의 지위를 잃었다.

이슈1팀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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