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경기자
"엄마, 괜찮아? 괜찮겠어?"
"여보, 조금만 걷다 오자. 너무 걱정하지 마."
"어머니, 힘드시면 바로 들어오세요."
"할머니, 파이팅!"
걷기에 나선 그날, 현관문 앞에는 난데없는 응원 인파가 몰렸다. 어쩌다 한 번 '산책하고 싶다'고 했을 뿐인데. 나는 살짝 멋쩍게 웃었지만 사실 미안하고 고맙고, 한편으로 두려운 마음이 뒤섞였다.
하나, 두울, 세엣. 힘겹게 계단 몇 개를 내려갔다. 남편에게 두 팔을 내맡긴 채였지만, 나는 걸었다. 스스로 첫 발걸음을 뗐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힘으로 첫걸음마를 떼려면 수없이 엉덩방아를 찧어야 한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또 시도한다. 오로지 한 발짝 떼기 위해 모든 것을 집중한다. 그 신기한 '운동, 움직임'을 위해.
나는 몇 달 동안 제멋대로 떨리는 몸을 어쩔 줄 몰라 침대에 누워 발버둥치고 뒤척거리며 살아왔다. 이제 그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넘어져도 울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순전한 열정으로 걷기를 다시 시작했다.
2019년 6월에서 8월까지, 그 여름은 긴 고통의 시간이었다. 9월까지도 몹시 힘겨웠고, 10월에 요양보호사가 왔을 때에도 여전히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고맙게도 아직은 튼튼한 다리 덕분에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겨우 몇 걸음, 다음에는 몇 미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점차 거리를 늘려서, 아파트 단지를 넘어 수백 미터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었고, 반포천 길을 따라 걸었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내가 사는 아파트 울타리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쭉쭉 뻗어 올라간 키 큰 나무들이 양쪽에 나란히 서 있는 일자형 길이다. 집에서 멀지 않고 전체 거리도 짧아 오래 걷기 힘든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거대한 메타세쿼이아가 길을 따라 늘어서고 드문드문 단풍나무나 다른 나무들이, 그 밑에 크고 작은 풀과 꽃들이 있었다. 특히 여름에는 짙은 초록색의 비비추가 동네 개구쟁이들이 몰려다니는 것처럼 한 뭉치씩 씩씩하게 피었다. 가을이 되면 메타세쿼이아들이 붉은 갈색으로 물들어 사뭇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불타는 듯한 이 길은 멀리서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심영희, <마음 저 들판, 길을 내고 걷다>, 중민출판사, 1만5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