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 환호성…표정관리하는 이차전지

중견·중소기업 포함돼
국내 공급망 강화 '환영'

<i>정부가 국가전략사업 세액공제율을 확 끌어올렸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이 국가전략사업이다. 정부 발표 후 관련 업체들은 일제히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이번 조치에 대한 속마음은 업계별로 다르다.이차전지업체들은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면서 너무 기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표정을 관리하고 있다. 미국 인플레 감축법(IRA) 시행 덕에 영업환경이 좋아졌는데 세액공제를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좋아하면 속이 보이는 상황이다.</i>

<i>디스플레이 업계가 가장 크게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제일 좋아서라기 보다는 정부에게 잘 보여 받아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작년 디스플레이 사업을 국가전략사업이라 선포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디스플레이는 아직 국가전략사업이 아니다. 관련 법을 뜯어고쳐 디스플레이를 국가전략사업에 집어 넣는 절차가 남아 있다. 정부가 법개정 작업을 서둘러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i>

<i>반도체 업계는 박수를 치고 있지만 표정이 좋지 못하다. K-칩스법을 발의했던 양향자 의원(국민의힘 반도체특위 위원장)은 "아쉽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조치로 대기업의 경우 세액공제율이 최대 25%까지 오른다. 기본은 15%다. 반도체 업체들은 실제로는 25%까지 공제를 받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경쟁국가인 미국 공제율은 25%다. 심지어 중국은 최대 100%다. 좋아만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보는 것이다. 업계별 상황을 심층 분석해 봤다.</i>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배석한 가운데 반도체 등 세제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정부의 국가전략산업 세액공제율 상향 조정 정책이 나온 3일 전지 업계는 겉보기엔 차분해 보였다. 중국 견제용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 덕분에 수혜를 본 상황인 만큼 기업들은 적절히 리스크 관리를 해가며 올해도 공격적 투자를 이어갈 전망이다. 이들 기업을 대표하는 협회 측도 "장기 투자 집행에 차질을 빚지 않을 것" 정도로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가 발표한 '국가전략기술 세제지원 강화방안'은 다분히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른 반도체용 정책이란 평이 많지만, 최대수혜자는 이차전지 업계라는 평가다. 이차전지도 반도체, 백신과 함께 엄연히 국가전략기술이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처럼 국가전략기술로 인정받기 위해 입법 절차를 밟아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차전지업체들은 IRA 수혜자다. 반도체처럼 세제 혜택이 절박한 것은 아니었다는 게 중론이다. 이차전지업체들은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면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표정관리에 들어간 모양새다.

전지업계에선 대기업 6→15%, 중견기업 8→15%, 중소기업 16→25%로 7~9%포인트가량 한 번에 올리기로 정부가 공식 발표한 점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중소기업 +9%포인트 상향에 높은 점수를 주는 분위기다. 여기다 추가 투자 증가분에 대한 혜택까지 고려하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은 대기업 최대 25%, 중소기업 35%까지 올라간다.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한국 이차전지 가치사슬의 특징은 대기업 계열사와 중견기업이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같은 베터리 셀 업체에 개별 소재를 각각 납품하는 것이다. 대표 양극재 기업인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등 중견기업도 많다. 이들 기업에 직접적인 혜택을 받으면 한국 배터리 산업의 기초 체력(펀더멘털)이 강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한국전지산업협회는 "투자 세액공제를 활용한 주요 기업의 선제적 투자는 가치사슬로 연계된 중소·중견 배터리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설비 및 시설투자 확대로 연계 확산돼 국내 산업 생태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혜택을 '글로벌 초격차'로 가는 투자 집행 리스크를 완화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IRA를 호재라고만 받아들이지 않고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IRA는 북미에서 만들어진 배터리를 쓰거나 현지 생산 전기차를 대상으로 대당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지급하는 규정이다. 중국산 배터리를 쓴 전기차는 제외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은 나라만 보조금을 준다. 이런 까닭에 한국 배터리 업계에 나쁘지 않은 규정이란 평을 받았다.

협회는 IRA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 한국 배터리 셀 업체에 유리하긴 하지만 유럽연합(EU) 원자재법 등 '자원 무기화' 움직임도 동시에 발생하고 있어 호재로만 볼 순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측면을 두루 고려하면 이번 세제 혜택에 대해 "조속히 국가전략산업 입법과정을 밟으라"는 디스플레이 업계, 정부에서 성의를 보인 만큼 투자 고민도 커진 반도체 업계보다는 다소 점잖은 반응을 보였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전지업계는 정부의 세제 지원으로 지난해 11월 발표한 '이차전지 산업 혁신전략'에서 제시한 것처럼 2030년까지 50조원 이상의 국내 투자를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협회는 "한국을 세계 최초 기술을 개발·적용하는 중심지 '마더팩토리'로 구축하고 국내 생산설비도 확대해 '글로벌 초격차'를 확보하는 게 목표"라며 "정부의 이번 투자 세액공제 확대 추진 결정은 고금리, 고물가 등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업계가 계획한 투자를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가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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