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나영기자
이은주기자
"은행에서 빌린 돈 하루라도 연체 안 하려고 발악하며 갚는 저 같은 상인도 시한폭탄이에요. 지금까진 버텼지만, 요즘처럼 물가가 미친 듯이 오르고 경기도 안 좋아지면 내년엔 어떻게 될지 모르죠." 경기도 수원에서 삼겹살집을 하는 김창진(57) 씨는 그의 동네에서만 30년 넘게 가게를 한 토박이 사장이다. 코로나19 때도 단골들은 간간이 찾아왔고, 은행에서 대출받아 운영비로 쓰며 유지했다. 그는 "은행 대출금을 갚느라 올해는 내 양말 한 켤레도 안 샀다"라며 "코로나 때 동네 가게 사장들은 문을 닫거나, 빚잔치를 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팬데믹이 번진 2020년부터 현재까지 자영업자 대출이 큰 폭으로 뛰면서 부실 위험으로 인해 금융권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사업소득이 위축된 중소득층 자영업자들의 소득 대비 부채 상환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중간소득 자영업 가구(상위 30~70%)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41.3%로 집계됐다. 예를 들어 월 100만원을 벌면 41만원을 빚 갚는데 쓴다는 뜻이다. 저소득 자영업자는 38.8%, 고소득은 39.5%로 중소득보다 다소 낮았다.
경제적 충격이 추가로 가해지면 중·저소득 자영업자들의 채무부담이 급격하게 늘 것이라 한은은 예상했다. 세 가지 조건(올해와 내년 각각 기준금리 0.5%포인트(P) 인상·금융지원 9월 종료·손실보전금 효과)을 전제로 자영업 가구의 DSR 변화를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하위 30% 저소득 자영업자의 DSR은 올해 34.5%에서 내년 48.1%로 13.6%P 급등했다. 중소득 가구도 38.6%에서 47.8%로 10%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이들이 빚을 못 갚기 시작하면 1·2금융권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은은 "이번 달부터 대출만기 연장 지원 조치가 종료되고, 대출금리가 상승하면서 자영업자의 채무상환 능력이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자영업자 대출은 여러 은행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비중이 높아 특정 대출이 부실화될 경우 업권 간 부실 전염도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자영업자들의 대출 부실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정부의 대출·보증 프로그램을 이용한 자영업자들 중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등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어서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1 회계연도 결산 보고서’ 에 따르면 신용보증기금의 '소상공인 위탁보증 프로그램' 보증 사고율은 2020년 5월 0.2%에서 2022년 3월 2.2%까지 늘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들이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최대 4000만원까지 보증을 서주는 게 소상공인 위탁보증프로그램이다. 문제는 이 제도의 시작 첫해부터 보증사고가 발생해 계속 사고율이 증가하고 있단 점이다. 보증사고 건수는 채무자가 이자를 못 내거나, 원금을 상환할 수 없을 때 집계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돈을 빌리면 처음 2년은 이자만 갚다가 3년째부터 원금과 이자를 분할 상환하면 된다. 그런데도 대출을 받은 그해부터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소상공인들이 코로나19 기간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연 1~4%의 저금리로 정부 정책 자금을 빌린 자영업자 중에서도 돈을 못 갚는 사람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실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정책자금 연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정책자금을 대출 연체 규모는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직전인 2019년 12월, 정책자금 상환을 90일 이상 연체한 누적 건수는 2410건(1228억원 규모)이었다. 2020년 말에는 4400건(1862억원)으로, 2021년 말에는 8284건(2491억원), 올해 7월에는 1만2424건(3080억원)까지 치솟았다. 불과 3년도 지나지 않아 연체 건수는 5배, 연체 금액은 3배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2016년부터 상시근로자 5인 미만인 영세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경영자금을 직접 대출해주는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일반은행보다 낮은 이자로 훨씬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했음에도 빚을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이달 말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이 종료되면 정부가 부실 징후 포착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정부가 코로나19 기간에도 겨우겨우 빚을 갚아와 신용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거나, 연체자로 분류되지 않은 분들을 특정해서 이들의 부실 징후들을 살펴보고 지원을 고민해야 한다"며 "부실이 누적되기 전에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위험 관리를 위한 정부 차원의 금융 교육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이은주 기자 golde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