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20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다. / 사진=tvN 방송 캡처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 후 처음으로 예능 방송에 얼굴을 비춘 것을 두고 시민들 사이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예능 방송이 정치인의 '이미지 포장용'으로 쓰이고 있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정치인도 자유롭게 매스컴에 출연할 수 있다는 옹호도 나왔다. 전문가는 정치인의 예능 방송 출연이 이미지를 개선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정치인 개인의 역량에 달린 문제라고 설명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20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에 출연했다. 사전 녹화된 이 방송에서 윤 당선인은 대통령 당선 후 느끼는 부담감, 향후 국정 운영에 대한 각오 등을 전했다.
유퀴즈는 유명 방송인이 일반인과 함께 담소를 나누거나 퀴즈를 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토크쇼 프로그램이다. 이렇다 보니 MC를 맡은 방송인 유재석은 이날 방송에서 윤 당선인의 출연에 대해 "진행하면서 단 한 번도 있지 않았던 그런 분위기로 상당히 당황스럽기는 하다"라고 시인하기도 했다.
방송을 접한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윤 당선인의 방송 출연은 부적절했다'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예능 방송이 정치인의 이미지 개선용으로 쓰였다는 주장이다.
21일 '유퀴즈' 공식 시청자 게시판에는 "벌써부터 정권 나팔수 노릇이냐", "갑자기 정치인을 등장시키는 게 무슨 의미냐",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토크쇼 아니었나" 등 혹평이 쏟아졌다. 다만 "윤 당선인 얼굴을 봐서 반가웠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흥미로운 시청자도 있었다" 등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매스컴을 이용해 유권자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일반 예능 방송에 출연해 유권자들에게 얼굴을 알린 정치인들도 많다.
지난해 9월 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윤 당선인 / 사진=SBS 방송 캡처
지난해 9월 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는 '대선주자 빅3 특집'을 마련해, 당시 유력 대선주자였던 윤 당선인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출연시키기도 했다.
당시 이 방송에서는 대선주자들의 자택 내부 모습을 공개하는가 하면, 이들이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거나 경쟁 후보들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는 등, '인간적인 면'을 조명하는 데 집중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지속적인 예능 방송 출연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이 고문의 경우 성남시장이던 지난 2017년 SBS 토크 쇼 프로그램 '동상이몽' 고정 멤버로 활동하며 무려 11회 출연했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009년 MBC '무릎팍도사' 출연을 계기로 정계 진출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방송을 통해 '청년 멘토'로 떠오른 그는, 2년 뒤인 지난 2011년에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여론조사에서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안 위원장도 예능 방송 출연 덕분에 정치를 시작할 명성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2020년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제 명성은 '무릎팍도사'에 나갔을 때가 최고였다. 그 이상은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그 방송 출연 이후 외출하면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라고 회상했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009년 MBC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을 계기로 인지도를 높였다. / 사진=MBC 유튜브 캡처
그런가 하면 지난해 1월, 4·7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아내의 맛'에 전격 출연해, 자신의 일상생활을 공개하고 이미지를 제고하기도 했다.
정치인의 방송 출연에 대한 시민들의 견해는 엇갈렸다. 단순한 '이미지 홍보용' 아니냐는 부정적인 의견이 있는가 하면, 거리감이 있었던 정치인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할 기회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학생 A씨(26)는 "예능 방송이라는 포맷으로 어떻게 정치인을 검증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나. 오히려 감성에 호소하면서 정치인의 이미지를 포장하는 효과나 있을 것"이라며 "공직자의 능력이나 도덕적 책무가 아니라 단순히 인기와 매스컴 전략만 강조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본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40대 회사원 B씨는 "차라리 정책 토론 같은 방송에 나와서 서로 논쟁을 벌이는 게 낫다. 정치인은 정책과 능력으로 평가받는 게 가장 정당하다"라며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은 의미도 영양가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30대 직장인 C씨는 "시대가 바뀌었다. 뉴스나 토론보다 예능, 유튜브같은 콘텐츠가 훨씬 강한 파급력을 가지는 시대"라며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인이라면 플랫폼의 변화를 따라갈 필요가 있다. 예능의 내용이 좀 가볍다고 해서, 거기 출연하는 정치인까지 깎아내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SBS '동상이몽2'에 특별 출연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부부. 이 고문은 성남시장이던 지난 2017년 이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다. / 사진=SBS 방송 캡처
전문가는 정치인들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 예능 방송을 택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윤석열 당선인의 경우 대선 기간 전후로 불통이라는 이미지도 있었고, 이런 비호감적인 측면을 덜어내려고 예능을 택했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다른 대선후보들이나 정치인들도 이미지 개선을 위해 예능에 출연하는 일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다만 "예능을 통해 나빴던 이미지를 한 번에 개선한 성공 사례도 있는 반면, 오히려 역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라며 "예능에서 어떤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냐는 것도 결국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리스크 있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